“낙선하니 보이는 것들… 이후 발자국 하나의 길 되길” : 교계교단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소금과 빛’은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역할이자 사명일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맛을 내고 빛을 내는 전문인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성패(成敗)의 패러다임을 밀어내고, 현재진행형의 “분투”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삶의 서사를 관통하는 질문들을 찾기 위해, 정애주 대표(홍성사)와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크로스’입니다. ‘십자가’의 뜻도 있지요.

첫 대담자는 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21대 지역구 선거에서 낙선했지만, 현재 지역을 떠나지 않고 주민들과 살아가고 있는 김현아 님(현 국민의힘 비대위원)입니다. -편집자 주





김현아

▲지난달 서울 합정동에서 만난 김현아 위원은 “정치인 아닌 사람들이 정치적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도시 재생 위한 ‘다시작 도시연구소’ 시작
리모델링 등 지역민들 관심사 교육도 함께
지역민 위해 법 만드는 정치인 되어주고파

정애주 대표: 전 국회의원이 되어 신분이 달라지셨습니다. 불편한 점 3가지를 뽑는다면.

김현아 위원: 대학 졸업 이후 월급이 끊겨본 적이 없었습니다. 먼저 정규 수입이 없다는 것이 가장 불편한 점입니다. 나머지는 너무 자유롭습니다. 눈치 보지 않게 됐고, 생각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지고 나서 보이고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또 다른 불편함이라면, 의사일정부터 모든 일을 비서진들이 다 해줬는데, 그들이 사라지니 모두 제 일이 됐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의원 시절보다 일은 1/10로 줄었지만, 시간은 10배가 걸립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만 더 하고 나왔으면 ‘바보될 뻔’ 했습니다. 남들이 제 일을 다 해주다 보니, 의원 시절 4년 사이에 일상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전 의원이 된 1년새 운전하다 사고도 나고, 차 고장도 겪었습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바보 되는 것’을 이쯤에서 멈췄다고 생각하니 다행입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오히려 저를 위해 애써준 보좌진들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전 보좌진들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그때 고마웠다’고요(웃음). 지금은 일정 조정부터 모든 일들을 직접 해야 합니다.

의원 시절에는 회의를 앞두고 보좌진들이 원고를 서너 개 가져오면 ‘이렇게밖에 못하냐’고 다그칠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제가 원고를 직접 써야 합니다. 남들이 써주는 걸 고치는 일이 얼마나 쉬웠는지 새삼 느낍니다. 밤새 고민했을 그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지금은 감사한 일이 많습니다. 월급도 없어 보니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낙선 후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하면서, 남편에게 1년 생활비를 할당받았습니다. ‘인생 휴가를 달라. 1년만 쉬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쓰고 있어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정 대표: 정기적 수입이 없다, 참모진이 없다 외에 불편한 점이 있다면.

김 위원: 국회도서관을 비롯해 자료를 찾는 일도 힘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국회에서는 모든 발언이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주장을 알리려면 여러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제 이야기를 알리기 쉽지 않습니다.

정치를 한다는 게 어떤 힘이 있는지를 그때 알았습니다. 그때는 말 한 마디만 하면 뉴스로 전달됐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현직이 훨씬 많이 노출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건사고처럼 쇼킹한 수준이거나 비아냥의 소재가 아니면 잘 기사화되지 않습니다. 정리하자면, 제 말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 대표: 실질적인 문제네요. 한 마디로 힘이 없어졌다는 말씀이지요.

김 위원: 전에는 이런 것들이 힘인지 몰랐습니다. 월급을 받을 때도 소득이 일정하게 나오는 것이 힘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정 대표: 두 번째 질문입니다. 비례대표란 그 사람의 전문성을 보고 정당에서 일종의 스카우트를 하는 것인데, 재선을 위해서는 지역구를 정해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이 전문직 비례대표와 지역구 대표를 잘 구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의 구성원으로, 지역이라는 기반을 갖지 않으면 입법 활동이 공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지역구 국회의원에 도전하셨는데, 굳이 일산을 택하셨던 이유가 있을까요?

김 위원: 많은 분들이 어떻게 비례대표가 됐느냐고 물으십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부르신 것 같습니다. 정치권에 얼쩡거리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념했던 분야는 주택과 부동산, 끊임없이 수요가 있는 분야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와 정부 측 자문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연결고리로 정치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몇 차례 제의가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 당시 여당에서 가장 진정성 있게 제의해서 수락했습니다. 마침 몸담았던 연구원에서 한계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연구를 의뢰한 기업이나 정부 입장들 입장을 주로 대변해야 하기에, 국민들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정치계에 자문을 하다 보니 범위는 넓어졌지만, 그런 한계가 있어 입법 활동에 대한 제안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원에서 정년이 14년 남은 상태였고, 나름 잘 나가던 때였습니다. 대외 인지도도 좋았습니다.

고민했던 것은, 국회 법이 바뀌어 비례대표로 가려면 직장을 그만둬야 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직장을 휴직했다가 끝나면 돌아올 수 있었는데, 그때부터 겸직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고민했습니다.

비례대표 한 번만 할 생각이었기에, 4년과 14년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인생의 경로를 바꾸는 일에 있어 그 정도 투자는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스스로는 절대 14년을 못 버리겠지만, 의원직을 통해 14년을 버리고도 뭔가 기여할 수 있을 것 같은 공명심도 지금 생각하면 있었던 것 같습니다.

4년간 법안 발의는 100여건 했는데, 법안 통과율이 50%가 넘어 상위 5위권이었습니다. 의원들 중에는 되든 안 되든 일단 발의하고 나서 통과가 안 되면 국회 탓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전문성이 있다 보니 말이 안 되는 법안에 참여하는 것은 양심상 허락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숫자는 적지만, 될 만한 법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통과율이 높았습니다. 전문성을 갖고 비례대표로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다 4년 뒤 지역구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4년을 해 보니, 여의도 바닥에서 가장 하급이 ‘비례대표 여성’, 그것도 지역 연고가 없는 정치인이었습니다. 서울 태생은 아무 태생도 아닌 것과 같았습니다. 어디에 인사를 가면 ‘OO의 며느리 조카’로까지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배경도 없고 지역 연고도 없습니다. 서울을 벗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고향이 서울이어서 열등감을 느껴본 적은 처음이었지요(웃음).

국회도 ‘끼리끼리’ 모입니다. 심지어 ‘안동 김씨 모임’도 있습니다. 그런 식의 모임에 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쪽에 속해 있었다면, 법안도 훨씬 많이 통과됐을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심지어는 다른 당 의원들에게 법안 필요성을 엄청 어필해서 통과시키곤 했습니다.

10가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14년을 버리고 왔는데, 10가지 중 한 가지도 하지 못했습니다. 4선, 5선 하는 선수(選數), 정치세력이 없으면 뭘 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지역구 의원은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고향은 다르지만 그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기에 그만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민하던 차에, ‘3기 신도시’ 문제가 터졌습니다. 저는 단순히 일산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고, 이제 더 이상 신도시가 필요하지 않다는 철학이 있습니다. ‘3기 신도시’에 반대 입장을 냈는데, 일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면서 댓글을 달아주고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산 지역구로 갔습니다.

제 전문 분야에 대한 주민들의 요구도 많았고, 가서 보니 풀어야 할 숙제도 많은 동네였습니다. 특정한 배경이 없다면, 지역구 연고로 활동하는 의원이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당 차원에서도 ‘험지’였던 곳이라 공천이 용이했습니다. 그렇게 선택했습니다. 저는 경쟁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에는 잘 안 가는 편입니다. 상대적으로 당내 경쟁은 없고, 전문 분야로 봉사할 수 있었고, 러브콜도 받은 곳이어서 일산을 선택했습니다.





김현아

▲김현아 위원이 정애주 대표와 대담을 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정 대표: 비례대표 제의에 응한 것은 그 시기 자기 전문 분야에서 하던 연구소 일이 사주 쪽의 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사업의 소비자들을 위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갈증’이 있던 차에 제안을 받으셨네요.

국회에서 계속 자문으로 참여했지만 정치에 뜻이 없다가 연구원 21년째에 사직 후 국회에 들어갔는데, 거기에도 힘의 편차가 있었습니다. 비례대표, 여성, 연고 없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자신을 지지해 주는 분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셨는데, 그 내용이 핵심 같습니다.

정치인들의 문제는, 당신들이 깃발을 들고 따라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입법하시는 분들은 지지자들의 대표로서 그들의 편을 들어 입법을 해야지, 국민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하다 보니 지면 큰일나는 줄 알아요.

전 경제부총리 김동연 씨가 굉장히 정확한 워딩(wording)을 했습니다. ‘정치에 이기기 위한 경쟁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짜는 경장(更張)이 필요하다’. 무슨 야망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워딩 자체는 정확했지요.

이해에 결속된 지역과 사람들을 위한 입법 구성원이 필요합니다. 이 분들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질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본인 스스로 깃발을 들고 지지자가 아니라 추종자들을 규합하다 보니, 틀리더라도 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를 바꾸는 일은 그리스도인밖에 할 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당신의 지지자들은 누구입니까?

김 위원: 처음에는 3기 신도시 반대자들만 보고 일산에 갔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자기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그 지역만을 위한 정치인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배출한 정치인이 장관으로 갔는데, 정작 자신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정책들을 무지막지하게 쏟아놓고 희망고문만 하면서 지역을 10년간 방치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정치인의 희망고문적 지역 공약에 대해 ‘안 된다’고 말했다가, 선거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지역 주민들께서 ‘김현아가 옳았다’고 하십니다. 저는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자기 지역을 위해주는, 그렇게 입법 활동을 하는 정치인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국회에 와서 여야가 싸우는 모습을 보며,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상대를 그냥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면 공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잘나서 의원이 된 게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대표하는 것 아닙니까. 상대 의원을 욕하는 행위는, 상대방이 대변하는 국민을 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게 다 무너졌습니다. 그 의원을 공격합니다. 그 뒤 국민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여태까지 엘리트들이 출세의 도구로 정치를 하고, 국민들을 추종자로 이용했습니다. 서로 존중하는 척 하면서 이 연대를 유지해 왔지만, 이젠 무너졌습니다.

20대, 21대를 거치면서 국회 권위가 엄청나게 깨졌다고 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 청문회를 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야당 의원이 질의하자, 여당 의원들은 질의 대신 총리 방어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대변하는 국민들을 대신해서 물어야 하는데, 왜 블로킹 역할만 하지?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로 지역 정치인으로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전문성을 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순간, 주민들을 설득시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버리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국민들이 원하는 정치는 그런 전문가적 정치가 아닙니다. 지역 주민들의 마음과 요구를 정책적·기술적으로 푸는 것이 전문가이지, 주민들에게 전문성을 내세워선 안 됩니다.

처음에 저는 전문성도 일종의 기득권이라 생각했고, 이걸 놓는 순간 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역민들과 계속 접촉하면서 느꼈습니다.

지역에서 상담하러 많이들 오십니다. 처음에는 토론을 하고 답을 가르쳐 주려 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했지만, 지금은 그냥 들어드립니다. 그런데 제게 털어놓은 뒤 조금 말씀을 드리면, 돌아가서 방법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다시 와서 자문을 구하십니다. 그러면 저는 들어드리면서 공감하면, 고민해 보겠다고 하고 돌아가서 또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입법에 대한 이론이 아니라, 법률이 현장에서 실제로 이렇게 작동되고 있으니 이를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전문가적 정치를 벗어나 보니, 저는 일종의 ‘번역가’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이고 전문적인 용어들을 쉽게 번역해 전달하고, 국민들의 투박한 언어를 세련되고 전문적인 법적 용어로 바꿔서 해결하는 통로의 역할 말입니다.

하지만 너무 엉성한 법률이 많습니다. 원하는 방안이 아주 원색적으로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국민들이 원하는 대로 작동되지 못하게 됩니다. 법제처 등에서 조정을 해야 하는데, 국회가 인기 정치를 추구하다 보니 적나라한 단어를 법 조문에 넣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민식이법’이라는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또 다른 피해와 재발을 막는 것이 목적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가지 사례만 극대화하다 보니, 법안 내용이 이상해지고 맙니다. 그것에 대해 아니라고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민식이가 안 불쌍해?’ 이렇게 나오지요.

이는 문재인 대통령도 현재 당면한 문제입니다. 저는 정치인이 거간꾼, 번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즘 저 자신의 힘빼기를 가장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전문적 지식은 오히려 학자들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듣고, 이를 나름대로 해석·요약해 전달하고 정책에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제가 다 공부해서 만들려고 했지만, 일단 현역 의원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도 부족하고 생각도 바뀌었습니다.

정 대표: 지지자들은 일산 주민들이라는 말씀이시군요. 일산 주민들, 지지자들이 김 위원에게 원하는 게 무엇입니까.

김 위원: 3년 뒤에 꼭 당선돼 달라고 하십니다(웃음). 고양시 일산서구가 살기 좋지만, 교통 문제가 심각하고 내부에 일자리가 없습니다. 이번에 고양시가 경기도 내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습니다. 그런데 ‘서울로 출퇴근자가 많아서 가서 옮아온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합니다. 일종의 자기비하적 발언 아닙니까.

일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산에서 정치인들이 가장 욕먹는 이유가 일자리를 만들지 않고 ‘베드타운’처럼 서울에 부족한 주택만 짓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족 도시로 만들어서 일자리를 가져오고, 서울과 접근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결국 서울 집값 문제 해결에 달려 있습니다. 서울에 집 계속 지어도, 집 문제 해결되지 않습니다. 가격이 내려가면, 경기도에서 다 들어갑니다. 약간은 흩어져서 살게 하되, 1시간 거리나 30분 거리나 약간의 시간차만 있을 뿐 편익에서 큰 차이가 없게 해야 합니다.

서울 살 때는 대중교통을 3분 이상 기다려본 적이 없었는데, 일산은 버스를 한 번 놓치면 15분 동안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버스를 안 타려 하고, 전부 자가용을 끌고 나옵니다. 그러면 버스 회사는 수익이 안 나고, 점점 버스 노선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합니다. 제 전문성은 이런 영역에서 필요합니다.

광역과 지역 교통망을 분리해야 하는데, 주민들이 요구한다 해서 직행 노선을 요리조리 돌립니다. 그러니 일산에서 서울 들어가려면 뱅뱅 돌아갑니다. 그런 상황에서 화정과 창릉에 또 신도시를 짓는다고 하니, 일산 쪽 사람들은 더 미칠 노릇이지요.





김현아

▲김현아 위원은 “지역구 정치인으로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전문성을 갖고 지역민들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대웅 기자

이제 국민들 마음을 맞추는 부분에서도 실력이 필요합니다. 국민들 요구가 아주 지엽적이거나 산발적일 수 있습니다. 이를 다 일대일로 대응하면 정책 수립이 안 됩니다. 통합하고 조정하고 최적화하는 정책 기술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이를 엘리트들이 마음대로 했습니다. 이후에는 주민들 요구를 포퓰리스트들(Populist, 대중의 인기를 등에 업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 -편집자 주)이 여과 없이 액면 그대로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주민들 요구를 받아서 전문가들이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정치계에 남아 그런 풍토를 만드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듯 정치인이 되는 것과 정치적인 삶을 사는 것은 다릅니다. 선거를 해 보니 운도 따라야 했습니다. 구도나 바람이 받쳐주지 않으면, 공약이 아무리 좋아도 당선되지 않습니다. 서울·부산 시장 선거를 앞두고 있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기는 정치만이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인이 선출직 정치만 바라보면,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선거에는 2등이 없지요. 그러려면 인기영합적, 지도부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시민단체에서 일하며 정치적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이 정치적 삶을 사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바뀝니다.

저도 전문가 그룹에 있었지만, 사실 전문가 그룹이 제일 비겁합니다. 정권이 잘 나갈 때는 절대 반대 목소리를 내지 않고 편을 들어주면서 좋은 자리에 가거나 각종 위원회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정치가 뭐 중요해?’ 했지만, 역량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비겁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정치적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가 계속 숙제입니다.

요즘 남편이 ‘언제 경제활동 할 거냐’고 스트레스를 줍니다(웃음). 말씀드렸던 1년 중 벌써 6개월이 지나갑니다. 과거처럼 돈만 버는 일이 아니라, 그런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하다 낙선을 했지만, 그 이후에도 삶을 살아가는 제 한 발자국마다 하나의 길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도 선거에 나가서 당선되고 안 되고는 세상적으로 말하면 운이고, 신앙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절대 제 힘으로는 안 된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것만 바라보고 다른 것을 다 포기한다면, 인생이 너무 허무해질 것입니다. 이기지 못하고 공천받지 못하고 당선이 안 되면 너무 피폐해집니다. 그걸 알기 때문에, 항상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도망갈 궁리이기도 하고요(웃음). 그게 다가 아닌 삶도 보여줘야 합니다.

정 대표: 계속 이야기하시는 게 제 생각에는 정치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하는 정체성 문제로 보입니다. 이제 진짜 정치인의 길을 가시는 것 같습니다. 도망갈 궁리를 말씀하셨지만, 되돌아가는 길을 만들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역 주민들을 사랑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들의 필요를 번역해서 입법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세워가야 할텐데, 그러려면 후원금을 모집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 위원: 원외 인사는 후원금을 받을 수 없게 돼 있습니다. 재단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원외 인사들이 피폐해지고 돈의 유혹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다시작 도시연구소’를 시작했습니다. 도시 재생을 위한 연구소입니다(다시 시작하다, 많은 도시(多)를 다시 세운다(作), 다 시작하다, 도시를 다시 짓다 등의 의미).

교육 사업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지역민들이 궁금해하는 입시제도, 아이 교육 등도 있고, 최근 일산 지역이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아서 리모델링 학교 프로그램도 런칭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교육으로 바꿨습니다.

코로나가 정치도 많이 바꿨습니다. 연말이나 신년에 당원들이나 지지자들끼리 해맞이를 보곤 했는데, 올해는 온라인으로 모여 집에서 새해 카운트다운을 했습니다. 코로나 장기화에 대비한 온라인 미팅도 시험하고 있습니다.

대담을 마치면서, 다음 ‘크로스’를 위한 ‘여는 질문’도 남겼습니다.

정 대표: 라이벌 관계 내지 같은 이슈를 두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 크리스천들끼리 대담을 하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손혜원 전 의원과 대화를 나눠 보는 것입니다. 먼저 묻고 싶은 것은, 손혜원 전 의원의 목포 투자가 왜 문제입니까.

김 위원: 현직 의원이 아니었다면 지금 거론되는 많은 부분이 무죄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충돌 금지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회의원은 관련 상임위원회 정보를 이용한 어떤 경제행위도 해선 안 됩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도시재생 행위 자체가 잘못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판결이 나오면 ‘왜 무죄지? 왜 유죄지’ 하시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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