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민국 칼럼] 회개 백신



명의(名醫)는 질병을 잘 고치는, 이름난 의사를 일컫는다. 명의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올바른 진단을 해야 한다는 전제가 따른다. 곧 명의는 질병의 원인을 올바로 진단하는 의사이다.

인류는 지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질고의 환경을 견디어내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공포로 실의에 빠져 있다.

지구촌이 좁다 하고 나다니던 인류의 삶의 유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어떤 의미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형벌이기에, 인간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이래, 많은 역병의 시대를 지나왔다. 자연재해나 역병은 언제나 역사의 변화를 초래한다. 역사적으로 3세기 동안 초기 교회 시대만 돌아보더라도 크게 두 차례의 대역병이 발병한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첫 번째 역병은 2세기 중엽, 165년 겨울에 발생한 역병이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치하 베르스의 군부대에서 발병한 이 역병은 180년까지 15년간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고대 사회는 통계에 무관심하여 정확한 사망자를 알 수 없으나, 로마제국 인구의 4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정한다. 이 역병은 1-2년 정도로 유행하다가 종식된 것이 아니라 무려 15년간 지속되었고, 황제 아우렐리우스 자신도 이 역병으로 180년 3월 17일 사망했다.

두 번째 역병은 249년 시작되어 251년 창궐하기 시작했다. 262년까지 계속된 ‘키프리아누스 역병’이라고 불리는 이 질병은 천연두나 홍역을 경험해 보지 못한 지역에서는 면역력의 부재로 피해가 컸고 치사율도 높았다.

이때 로마 시에서만 하루에 5천 명이 죽었다는 보고가 있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인구의 3분의 2가 죽음을 맞은 것으로 추정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때 역병의 환경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기독교의 가치는 극한의 상황에서 유효한 역할을 통해 드러난다.

당시 대역병의 현실에서 종교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첫째로 ‘왜 이런 재앙이 일어났는가?’ 하는 재앙의 원인에 대한 설명이고, 둘째로 ‘재앙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해결을 위한 대처 방안을 제시해야 했다.

자연과학과 의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이러한 역병에 대하여 기독교가 답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지만, 초대교회 당시는 종교가 역병 발생 원인에 대하여 답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당시 이방 종교, 곧 이교도들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하여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방 종교인들의 유일한 해답은 도피였다.

그래서 이방 종교 사제들은 피신했고, 고위층 관리들이나 부유한 이들은 도시를 떠나 인적이 드문 산중을 안전한 곳으로 여기고 피신했다. 그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았으나, 도피가 최상의 대책이라고 여겼다. 부모는 자녀를 버렸고, 자녀도 부모를 버렸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교회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때는 데시우스 황제 치하에서 기독교가 조직적인 박해를 받고 있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했다.

알렉산드리아 감독이었던 디오니시우스는 “이교도들은 처음 질병이 발생하자 아픈 자를 내쫓았고, 가장 가까운 지인들이 먼저 도망쳤고, 병든 자가 죽기도 전에 거리에 내버렸고, 매장하지 않는 시신을 흙처럼 취급했다. 그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치명적인 질병의 확산을 막는 대안이라고 여겼으나 아무리 몸부림쳐도 해겨활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과 달랐다고 증언한다.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άνοι)’,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이라는 단어다. 3세기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대가로 죽음을 맞았고, 사랑을 실천했던 사람은 장로나 집사 혹은 평신도들이었으며, 이들이야말로 순교자와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은 영혼의 손(Love is the hand of the soul)’이라고 말했다.

역병이 창궐할 때마다, 민중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마다, 그리스도 교회는 그들에게 소망을 심어주었다. 대역병으로 인한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박해를 멈추지 않은 로마제국은 패망의 길을 걸었고, 그리스도교의 참된 가치를 왜곡한 이교도들은 몰락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왜 확산되고 있을까?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절대적 사랑을 인류는 외면했다. 외면한 인류에게 내린 하나님의 형벌이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전제를 인정할 때, 비로소 인류는 회개하고 참회할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인류의 노력은 가상하나, 하나님께서 친히 코로나19 바이러스 형벌을 거두시지 않으면 만약(萬藥)이 무효인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아무리 자연과학이나 의학이 발전한 오늘일지라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세인(世人)의 상식으로는 미련해 보이는 참된 회개만이 하나님의 형벌인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물릴 수 있는 대안이다. 곧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회개이다.

오늘도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진 환자 수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소식 속에, 추석 명절이 다가온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풍성한 추수의 계절이다. 전광훈, 문재인, 윤석열, 추미애, 식상한 이름들이 연이어 지나간 태풍처럼 뉴스의 대미를 오르내린다.

문득 ‘순교’와 ‘자살’을 구분하지 못하는 테러분자와, 기독교를 박해하다 몰락한 로마제국의 황제가,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원형경기장 안에서 멱살을 맞잡고 난투극을 벌이는 만화가 떠오른다. 상현달 외로움에 가을 깊어가는 소리 애달프구나.

하민국 목사
웨민총회 신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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