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예수님 피를 마시고, 성령님을 마시라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예수 피를 마심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고전 11:23-25, 눅 22:2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

성찬식의 근거 구절인 동시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독교는 인육(人肉)을 먹는 자들’이라는 모함을 받게 한 구절들이다. ‘예수 피’는 하나님과 그 백성 간에 맺어진 ‘영원한 언약(히 13:20)’이다.

‘피를 마심’은 ‘그리스도인 됨(being christian)’,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다.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로 일컬어지지만, 사실 그 ‘믿음’의 내용은 ‘예수 피를 마심’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무엇을 믿느냐’고 물으면, 많은 경우 ‘예수 피’와 무관한 답변들을 늘어놓는다. ‘예수를 의지 한다’, ‘예수의 말씀을 믿는다’ 혹은 ‘예수의 인격을 믿는다’, ‘예수의 박애(博愛)를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예수의 피를 마심’에 대해서도 핵심을 관통하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하다. 실존주의 기독교(Existential Christianity) 교인들은 ‘피를 마심’에 대해, 성도가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한다.

가상하지만 분수를 넘은 것이다. ‘십자가’는 우선 ‘믿어야 할’ 대상이다. ‘지고 감’은 차후의 일이다. ‘십자가’를 믿지는 않고 성급하게 ‘지고 가려’다 사단(事斷)이 난다.

어떤 이들은 ‘예수 피(죽음)’를 문학적, 철학적으로 상징화(symbolizel, 象徵化)하여 그들의 작품, 논리를 전개하는 도구로 차용하려다, 본의인 ‘구속 개념’을 왜곡시킨다.

‘예수 피를 마시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내 죄값으로 받아들여 하나님과 화목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 베드로의 발을 씻기려 할 때,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고 만류하자,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요 13:8)”고 하신 말씀은 ‘기독교의 핵심’을 관통한다.

‘예수 피’를 마시지 않고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은 ‘남의 일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무의미한 공론(空論)이다. ‘예수 피’를 마신 이후에 뭐든 말할 자격을 갖는다.

이 ‘예수 피를 마심’에서 기독교의 중요 교리들이 다 따라나온다. ‘구원’이 ‘피를 마심’으로 된다. 내가 마신 ‘예수 피’로 내게서 하나님의 의(義)가 이뤄지니, 내게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그친다. 이것이 구원이다.

애굽의 유월절(the Passover, 踰越節) 밤, 하나님의 저주가 ‘어린 양의 피’가 뿌려진 이스라엘 집을 넘어간 것은(출 12:23, 30) ‘예수 피가 뿌려진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그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었다(벧전 1:2)”는 말은 ‘구원받기로 택정함을 입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임마누엘(Immanuel)’ 역시 ‘예수 피를 마심’의 결과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 6:56)”. “‘예수 피를 마셔’ 죄값이 청산된 자에게 ‘하나님이 임마누엘’ 하신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이 ‘예수(마 1:21)’와 ‘임마누엘(마 1:23)’인 이유를 설명해준다.

신약의 ‘피를 마심(요 6:56)’의 구약 대구(對句)가 ‘피 뿌림(출 24:8)’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피)을 내 죄값으로 받아들인다’의 동의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피)을 내 죄값으로 전가 받는다’는 뜻이다.

◈성령을 마심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이 ‘성령의 마심’ 역시, ‘피를 마심’처럼 오남용(誤濫用)되어 종종 본의인 ‘구속 개념’을 퇴색시켰다. 그 중 하나가 주후 4세기 시나이(Sinaite)의 헤시카스트(Hesychasts)에 의해 창안되고, 14세기 동방정교회(Eastern Orthodox Church)에서 공식 가르침으로 자리잡은 소위 ‘예수 기도(Jesus Prayer, Hesychasm)’혹은 ‘호흡 기도(breath prayer)’이다.

들숨(inhalation) 때 ‘성령(빛)을 마시고’, 날숨(outbreathing) 때 ‘죄(어둠)을 내보낸다’는 일종의 ‘영혼 정화(purification)’ 기능으로 차용됐다(이는 사실 ‘불교의 호흡명상’과 유사하다).

이후 그것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라는 말씀과 연계돼, 들숨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날숨에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예수 기도’의 정형(定型)이 됐다.

그러나 지속적인 ‘의식의 몰입’을 통해 하루에 수백, 수천 번씩 이뤄지는 이 ‘예수 기도’는 ‘정신력’이 약한 이들에겐 ‘정신 착란’을 야기시켰고, 그로 인해 교단 지도부에서 그것의 실행에 주의를 촉구했다.

‘성령을 마심’의 성경적 의미는 ‘예수 피(복음)’과 관련한다. 이는 ‘그리스도의 피의 구속’이 이뤄진 후, 그것의 증거를 위해 ‘성령이 파송된(요 14:26; 16:13)’ 사실에서도 확증된다. 둘은 불가분리성을 말한 것이다.

‘예수의 피’ 없인 ‘성령’도 없고(행 2:31-33, 딛 3:6), ‘성령’ 없인 ‘예수의 피‘도 없다(히 9:14). ‘성령 없는 피’는 돼지와 같은 더러운 ‘죄인의 피’에 불과하고, ‘피 없는 성령(?)’은 흉악한 ‘악령’일 뿐이다. ‘성령은 예수 피’를, ‘예수 피는 성령’을 상호 보증한다.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고전 12:13上)”란 ‘각 성도들이 예수의 죽음(피)을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여(세례),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룬다(엡 4:3)’는 뜻이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였느니라(고전 12:13下)”는 ‘예수의 죽음(피)을 믿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 동일한 한 성령을 마시게 했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복음 전도자’로 파송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 20:21-22)”고 하신 것도 ‘성령’이 ‘예수의 피(복음)’와 불가분리라는 확증이다.

이는 “‘피의 복음’을 갖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너희는 홀로 가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동행하신다”는 말씀이다. 혹은 “‘피의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엔 반드시 ‘성령이 증거’가 수반되어, ‘믿고 구원 얻는’ 역사가 따를 것이다(딛 3:5)”는 뜻이다.

“예수가 내 죄를 위해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피의 복음’을 전하고 들을 때, ‘증거자 성령’이 그 현장에 임하여 거기에 연루된 모든 이들에게 성령의 임재를 경험시킨다. 그 극명한 예가 베드로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피의 복음’을 설교했을 때이다.

“그를 저희가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행 10:39-44)”.

과거 부흥사들이 한창 주가(株價)를 올리던 때, 집회 때마다 ‘성령을 받으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왜 비인격적인 물건 취급을 하느냐?’, ‘감히 사람이 어떻게 성령을 줄 수 있느냐?’며 거부감을 드러냈었다.

그러나 그때로 돌아가 당시 부흥사들의 입장을 변호한다면, 아마 그것은 그들이 ‘피의 복음’을 전할 때 따르는 ‘성령의 부음(anointing)’에 고무돼, ‘복음으로 인한 성령의 감동을 입으라’는 뜻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다는 그렇지 않다. ‘피의 복음’없는 사이비한 ‘성령 사기꾼’들의 ‘성령 세일(sail)’도 있었다.

‘피의 복음’을 말하고 듣는 중에, 사람들은 ‘성령’을 마신다. 예배 시간은 ‘예수의 피’와 ‘성령’을 마시는 시간이다. 이 ‘진짜 성령’을 마신 자들은 ‘거짓 성령’에 속지 않는다.

이 ‘진짜 성령’을 아는 자가 ‘참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한다(빌 3:3)”.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https://blog.naver.com/PostList.nhn?blogId=byterian)
저·역서: <이신칭의, 값싼 은혜가 아닙니다(CLC)>,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기독교신학 묵상집(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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