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강석 칼럼/ 총회 100년을 설계하다] (43)칼빈주의 신학 위에 총회를 세우자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부총회장)

얼마 전 분당에 있는 칼빈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칼빈박물관은 정성구 박사가 35년 전에 설립한 곳이다. 정성구 박사는 위대한 학자이자 설교자이고 부흥사였다. 나는 그 분을 직간접적으로 여러 번 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거의 3시간 반 동안 그 분의 간증과 특강, 박물관에 소장된 자료를 소개받았다.

박물관에는 폴리갑부터 어거스틴에 이르기까지,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 주기철, 박형룡, 박윤선 목사에 대한 원본 자료들이 즐비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칼빈박물관은 전 세계에 딱 3개가 있다고 한다. 프랑스에 있는 박물관은 시립박물관이고 관장이 가톨릭 신자이다. 또 제네바에도 있지만 한국에 있는 박물관이 가장 자료가 많고 풍부하다는 것이다. 박물관을 설립하고 운영하시는 정성구 박사의 설립정신과 가치가 가장 독보적이었다.

필자는 루터와 칼빈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루터는 음악을 잘하고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의협심이 강한 행동주의자였다. 그래서 그는 속죄권을 비롯하여 가톨릭의 부조리를 비판할 뿐만 아니라 비텐베르크대학 정문에 95개 조항 반박문을 써서 달아놓음으로써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렸지 않는가. 그에게는 사람을 선동하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었다. 요즘으로 말하면 광대적인 목회를 한 사람이었다. 심지어 흥분을 하면 가톨릭을 향하여 욕을 서슴없이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20년 후에 존 칼빈이 나타났다. 칼빈은 루터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그는 치밀한 논리의 사람이고 이론적인 사람이었다. 25세에 기독교강요를 쓰기 시작해서 27세에 출판하였으니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최근에 총신대 신대원 조직신학 문병호 교수가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라틴어 원전으로 부터 완역을 하여 출판을 하였다. 필자는 요즘 문병호 교수가 완역한 <기독교강요>를 틈틈이 읽고 있다. 어떻게 칼빈이 25세에 <기독교강요>를 쓰기 시작해서 27세에 출판할 수 있었을까. 정성구 박사에 의하면 그는 말씀의 사람이었고 어학의 천재였으며 독서광이었고 레토릭의 천재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칼빈은 로마의 가톨릭 누구와 논쟁을 해도 져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부들의 원전을 다 암송하여 인용을 하니까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수많은 책을 쓰고 작품을 남긴 것이다.

이런 칼빈의 사상이 베자에 의해 전수 되었고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교 사상이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와 언약도에 의해서 계승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을 거쳐 우리나라에까지 왔다. 나는 정성구 박사의 개인특강을 받고 자료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칼빈주의 신학과 사상을 후대에 전수하고 물려주기 위하여 한 인간이 이렇게 몸부림을 치며 노력했구나”하는 감동을 받았다. 나는 그 분 앞에 큰 절로 감사인사를 드렸다.

강의가 끝나고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총회는 칼빈주의 신학과 장로교적 사상으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너무 정치 중심의 총회가 되었다고 말이다. 자신도 여러 정치꾼들에 의해서 수많은 모함을 당했다고 한다. 오늘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칼빈주의 신학과 개혁신학 위에 서 있는 총회인가. 우리의 목회는 진정한 칼빈주의와 장로교 사상의 터전 위에 서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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