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의 설계자’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별세 – 조선닷컴


입력 2020.08.08 01:00


브렌트 스코크로프트(95)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7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사인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위키피디아
브렌트 스코크로프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위키피디아

제럴드 포드 행정부 당시인 1974∼1977년과 아버지 조지 부시 행정부 당시인 1989년∼1993년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지낸 스코크로프트는 성공적으로 냉전의 종식을 이끌어 내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국가안보보좌관 등과 함께 미국의 3대 외교거물로 꼽힌다.

베를린 장벽과 소련의 붕괴, 동유럽 민주화, 걸프전 승리 등이 모두 그의 안보보좌관 임기 중에 있었다. 1989년 중국 천안문 사건 당시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도 일조했다.

1925년 3월 19일 미국 유타주 오그덴에서 태어난 스코크로프트는 뉴욕 웨스트 포인트에 있는 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47년 졸업 후 공군 소위로 임관한 그는 이후 국방부에 입성해 국가안보관련 직책을 잇달아 맡으며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주목을 받았다.

1972년 2월 스코크로프트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군사 보좌관으로 동행했다.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때 중국에서 군수 지원을 매끄럽게 해결한 그는 공로를 인정받아 준장으로 승진했다.

이후 키신저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CS) 보좌관이 스코크로프트를 국가안보보좌관보로 임명했다. 1975년 스코크로프트는 헨리 키신저의 뒤를 이어 국가안보보좌관을 맡았다. 그는 그해 4월 베트남 사이공에서 미군 병력의 철수에도 관여했다.

스코크로프트는 1977년 1월 지미 카터 대통령이 당선된 뒤 NCS를 떠났지만 카터의 군축 자문위원회에 들어갔다. 이 위원회는 1979년 6월 카터와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서명한 전략무기협정에 영향을 미쳤다. 이 협정은 비준되지는 않았지만 미사일의 핵탄두 수를 제한하는 최초의 핵협정이 됐고, 향후 핵미사일 확산을 제한하는 규칙에도 영향을 줬다.

스코크로프트가 백악관으로 복귀한 것은 조지 H.W. 부시 대통령 때였다. 1989년 6월 천안문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 뒤 부시 대통령은 비밀리에 스코크로프트를 중국으로 보내 덩샤오핑과 만나게 했다. 당시 방문은 부시 대통령이 내린 고위층 인사의 중국 방문 금지 조치와 천안문 사태 이후 군사 금수조치가 발효 중인 와중에 이뤄졌다.

당시 CNN은 스코크로프트가 천안문 사태를 일으키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중국 관료와 건배를 하는 모습을 보도했다. 이 장면은 스코크로프트와 부시 정부에 대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스코크로프트는 후일 이 장면에 대해 “중국 측에서 건배를 제의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지만 내가 중국에 간 목적을 선택했다”고 소회했다. 그 다음날 치엔치쳰 중국 외교장관은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기 위한 로드맵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스코크로프트는 1991년 걸프 전쟁 때 대통령 자문역으로 활약했다. 그는 걸프 전 당시 연합군을 구축한 설계자였다. 이 전쟁에서의 업적으로 그는 1991년 미국에서 가장 높은 영예 중 하나인 ‘대통령 자유의 메달’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부고에서 “매스컴의 평가에는 개의치 않고 오로지 자신의 조언과 역량에 집중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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