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째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은혜의강교회

▲집단 감염이 진행된 은혜의강교회 인근에서 방역 활동을 하는 모습. ⓒ페이스북

대부분의 교회들이 온라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지체들과 제가 생각해야 할 점들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라인 예배가 주는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예배도 하나님을 담는 온전한 그릇이 아니기 때문에, 모이는 회중 예배의 장단점처럼 온라인 예배의 장단점이 명백합니다.

따라서 오늘은 여러분들과 온라인 예배를 드리며 주의해야 할 점들을 함께 나누면 좋겠습니다.

1. 공간보다 시간이다

예배의 중요성은 어떤 공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시간입니다.

공간이라는 말의 첫번째 뜻은 ‘비어 있음’입니다. 공간은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텅 빈 곳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에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그 안에 하나님이 아닌 자기를 채워넣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예배당으로서의 공간적 의미는 채워져 있긴 하나, 텅 비어있는 샘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의 공간을 물을 때 “예배할 때는 곧 이 때니”, 그러나 주님은 ‘시간’이라고 답하셨습니다.

여인이 가장 목말랐던 순간, 사람들이 아무도 없는 정오, 자신의 모든 것이 샅샅히 드러나는 부끄러움의 순간, 낯선 남자가 자신의 것을 빼앗는 듯한 알 수 없는 분노, 피하고 싶은 모든 순간마저 예배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자세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그 시간이 공간을 압도해야 합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공간은 정체되어 있습니다. 흘러간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시간에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들이 탑승해 있습니다. 과거에서 미래까지 수없이 많은 공간이 시간 안에 들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공간’에 대한 핑계로 예배드리지 못했다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지 못했던 이유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어떤 시간을 주님께 보냈는가에 따라 공간은 재창조되게 마련입니다. 내게 주어진 젊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기로 결정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은 어디에서 살아도 천국의 삶을 삽니다. 천국은 애초에 공간이 아니니까요.

반면 공간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늘 화려해 보이는 것에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타깝게도 화려한 공간일수록, 그곳은 우리를 시간에 눈 멀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급성장하고 대형화해버린 한국교회가 그동안 공간 만들기에 눈 멀어, 자신에게 부여된 수없이 많은 시간을 놓쳤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금은 그래서 ‘지금’입니다.

젊은이들은 지금 아니면 못 이룰 관계가 반드시 있습니다. 젊을수록 도전해야 합니다. 공간 앞에 멈춰 버리고 돌아가는 어리석음을 벗어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적 시간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고민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공간에 눈 멀어 시간을 버렸던 우리들을 돌아볼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내가 멈춰 서 있는 그 공간이 예배의 장소가 될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수많은 교회들이, 흩어져 드리는 예배에 대한 고민을 할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교회가 세상의 생명을 위해 자신을 포기할 줄 아는 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특별히 오프라인 신학 공부가 거룩함의 가치를 가진다고 강조했던 한국 신학교는 온라인 강의와 인터넷 신학 과정 준비를 할 절호의 시간을 놓칠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온라인 예배를 드릴 때, 우리는 이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2. 온라인 예배는 더 집중해야 한다

온라인 강의는 이제 쉽게 접할 수 있는 컨텐츠입니다. 한국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인강’에 익숙할 것입니다. 당연히 저도 많이 들어 보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공감할 겁니다. 인터넷 공부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만큼 집중하기가 힘듭니다. 애초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주변에 공부할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반면에 마음을 잘 정리하고 공부하면, 인터넷 공부처럼 유익되는 것도 없습니다.

공부도 그러한데, 예배가 온라인이면 우리는 당연히 생각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이 다가오기 전부터 이전 예배당 공간을 향했던 자신의 준비 시간만큼 철저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사모함 없는 예배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과 같습니다. 예배에 방해되는 것들은 먼저 정리해 두어야 합니다. 엄연히 예배 시간입니다.

핸드폰이 울리고 문자가 오면 보고 답장을 하고, 친구들이 오면 인사 나누고 하는 것이야 여러분 자유겠지만, 그래서 그 시간에 하나님의 살아있는 메시지가 마음에 들어올 리 만무합니다.

작은 공간에서 함께 찬양하고 말씀을 들어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라면, 지금 편안한 곳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환경에서 아무도 없는 그 공간 안에서 과연 집중해서 예배를 잘 드릴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합니다.

따라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시는 분들이나 온라인 예배를 인도하는 인도자들이 모두 고민해야 할 것은, 편안함에 익숙해져 과연 다시 모이는 예배가 시작될 때 내가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3. 삶을 예배로, 진짜 온라인(Online)

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의미가 가끔 무섭습니다. 온라인 세계가 진짜인지, 오프라인 세계가 진짜인지 헷갈리는 게임중독 청소년들이 많습니다.

진짜는 오프라인입니다. 그런데 오프라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가 좋지 않습니다. 살아있지 않은 ‘죽은 선’ 같습니다.

지난날 한국교회의 모습이 그랬습니다. 아니 저부터, 우리 모습이 그랬습니다. 선은 있는데 주님과 연결되지 않은… 교회와 교회와의 단절, 세상과 교회의 단절.

그래서 나는 너와 나뉘고, 우리는 ‘끼리’가 되어 우리와 그들이 나뉜 공간들. 그 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시간이 쌓여갔는데, 돌아보니 여전히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 알 수 없는 모호함.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모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 권세를 이겨 부활하심을 기뻐하고 구약부터 명령하신 안식일, 즉 창조의 하나님과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을 주일로 승화시켜 드림으로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겠다는 자기 개혁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날은 나는 이기적 사람이 아니라 나만큼 너를 사랑하기 원하는 사랑의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날 우리는 다시 말씀으로 온-라인 되어, 번쩍이는 말씀의 신호를 붙들고 세상으로 나가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야합니다.

‘온라인 예배’라는 키워드가 대세가 된 요즘, 그동안 우리는 과연 예배를 드린 것일까 돌아봅니다. 우리가 드려왔던 예배가 오프라인 예배였을까요? 문득 돌아보니 무섭습니다.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하고,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우리 모습은 그저 말끔한 형식, 괜찮아 보이는 제복을 입은채 적당한 시간, 그러니까 성도들이 졸지 않을 만큼의 효율적인 시간 관리와 감동적인 예화를 섞어넣은 예배, 그래서 오프라인이 된 것은 아닐까요.

예배의 형식을 놓고 거침없는 토론과 가르침을 하던 우리 모습에서 그 냄새가 조금 납니다. 모이는 규모를 놓고 목사의 파워와 성도의 권위까지 만들었던 우리 모습에서 그늘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득 ‘온라인 예배’라는 키워드가 대세가 되버린 요즘이 되니 생각이 났습니다. 지금 드리는 온라인 예배는 정말 ‘On-Line’된 것일까요? 주님께 말입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온라인 예배에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4. 온라인 예배는 교회로, 그리고 세상으로까지 연결되어야 한다

온라인 예배는 연결입니다. 끊어진 선을 잇고, 고장난 선을 고치고, 새까만 화면에 인터넷 신호들이 잡힙니다. 보이지 않는 신호에 의해 어마어마한 정보들이 주고받으며 화면에 영상과 음성 글씨들이 올라갑니다.

서로 전혀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놀랍게도 인사를 주고 받습니다. 각자의 공간이 놀랍게도 작은 바보상자 같은 모니터 안에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멈춰서서는 안 됩니다. ‘온라인 예배‘를 통해 우리가 끊어진 교회들과 서로 이어져야 합니다.

온라인 예배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많은 어려운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런 교회들을 이제 서로 도와야 합니다.

많은 미자립 교회들은 온라인 예배 때문에 오히려 초상집처럼 되었습니다. 미자립 교회뿐 아니라 작은 교회들은 이 시기가 두렵습니다. 세상이 보기에 모이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었고, 온라인 예배를 시스템화하자니 인력난과 재정적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하면 다시 모이게 할까, 성도들을 흩어지지 않게 할까의 고민이 아닌, 교역자와 성도들을 흩어 미자립 교회들을 도와 예배를 함께 만들어나가면 좋겠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는 예배를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오히려 지금 이 시기에 온라인 교회 시스템을 통해, 단점이었던 공간에 얽매이지 않고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는 작은 교회이지만, 할 수 있는 만큼 저희 온라인 예배팀과 함께 노하우를 나누려 합니다. 이 글을 읽고 도움이 필요한 교회가 있으면 문의 주십시오.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나아가 ‘온라인 예배’를 통해 우리는 세상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입니다. 그 분은 성전보다 크십니다. 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정신은 사람을 살리는 겁니다. 사람을 위해 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예배가 온라인 예배를 통해 살아나야 합니다.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을 통해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회복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5. 최근 어떤 분이 제가 지난번 쓴 글(온라인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 등)에 리플을 다셨다는 것을 오늘 편지를 쓰기 전 봤습니다.

제 글을 보시곤, 모이는 교회들이 신학적인 고민이 없거나 수준이 얕아서 모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저 역시 고민이 없어서 그 글을 쓴 것이 아닙니다.

모임은 너무 중요한 가치입니다. 당연히 모이는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모이기에도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쁨으로 만날 것입니다.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저의 원대로 마시고 하나님의 원대로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보자면 지금이라는 시간은 우리가 교회를 바라보며 믿음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들의 영혼을 위하여 무얼 포기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하고 내놓아야 할 시점입니다.

6. 우리 교회들이 힘들어진 것은 그 고민과 행동이 수동적으로 이끌려갔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지자체에 의해 끌려갔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하이데거는 존재론을 연구하면서, 우리와 그들로 나뉘는 이유에 관해 평범한 일상성의 함몰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남따라 살아가는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에 꽃피우는 자기 실제로서의 삶을 꽃피우지 못하면, 우리는 늘 남에 이끌려 살아갑니다. 그 삶은 아무리 많은 시간이 쌓여도 수동적인 공간의 변화만 줄 뿐입니다.

자기가 없는 삶은 공허할 뿐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끌릴 수밖에 없다면, 세상에게 이끌려 살아가는 교회로 존재가 상실되고 마찰은 계속 생길 것입니다.

존재가 회복되려면, 자기 주체성이 분명해져야합니다. 교회의 존재. 그리스도인의 존재론적 주체성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분은 성전의 주인입니다.
그분은 성전의 개혁가입니다.
그분은 자기를 죽여 부활하신 분입니다.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은 세상을 독생자를 죽이실 만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 분을 믿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을 살리고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포기하고 버릴 것인가를 ‘능동적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버림을 배우는 곳이 교회이면 좋겠습니다.

7. 편지에 저와 사역 이야기를 잠시 나눔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말씀드리면, 저희 교회는 4월 6일 정부가 정해놓은 방침 자체에 이끌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일반 목회를 하면서 동시에 자원봉사 선생님들과 기독예술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달꿈예술학교라는 이 학교는 한 명을 위해 99를 버릴 수 있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답하고자 생겨난 ‘한 명의 학생’을 위한 학교입니다.

정말로 1년에 한 명의 신입생만 받습니다. 그리고 그 한 명을 위해 20명이 넘는 자원봉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최근 제 꿈은 이 사역에 99명의 기다리는 양(자원봉사 선생님, 기도후원 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학생에게 공유와 사랑의 정신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공간 전체를 지역과의 소통, 그리고 공간의 필요를 느끼시는 분들에게 모든 공간을 무료로 나누어드리고 있습니다.

제법 지역과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당연히 유지 보수를 위해 많은 비용이 들어가겠지요. 하지만 믿음이라는 가치관이 가장 중요한 학교여서,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 때도 서울시와 1년 가까이 다투며 비전에 하나님과 예수님이라는 항목을 유지하면서 믿음을 지켜내고자 애를 썼습니다.

미션과 비전에 그 항목은 빼달라는 요청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이 정신임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다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제기하길래, 만약 이것이 이유라면 행정소송도 불사한다는 말에 1년 3명의 담당자가 바뀐 결과, 학교가 세워졌습니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은 정직하게 했지만, 대신 재정 지원을 잃었습니다. 대다수 기관들의 지원도 시도조차 못해보았고, 받고 있지도 못한 상태입니다.

교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학교와 교육 시스템을 위해 컨설팅이나 상담은 요청하면서도, 도움이나 후원을 해주겠다는 곳은 달꿈학교가 생기기 전후로 지난 8년간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한 학교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막상 돕는다고 무언가 뿌듯함이 바로 오는 곳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전과 형편을 아시고 개인 후원자들이 후원해 주는 것이 전부입니다.

결국 단체가 아니라 사람이 도와주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카페를 세워 수익을 통해 학교가 운영됩니다. 저부터 봉사했습니다. 매일 매일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오셔서 카페도 봉사로 돌아갑니다. 일하시는 분들이 휴일에 와서 봉사해 주십니다.

주택가 동네 한복판에 있는 학교 1층의 작은 카페인데, 1년 열심히 일해 얻은 순수익이 300만원이었습니다.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카페 운영비를 제외한 200만원을 학교에 기부했습니다. 카페지기들이 얻는 봉사료나 수고비용, 교통비도 없습니다. 물론 저도 없습니다.

3층에는 제 집이 있습니다. 그곳에 80 넘으신 아버님과 어머님이 계십니다. 본래 저희 가족이 30년 살던 집을 허물고 지으면서, 공간을 쓸 수 있도록 내어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하부터 2층까지 학생들이 언제든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학교에는 식당이 따로 없습니다. 설계할 때 화재 위험으로 조리실을 넣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안전이 중요해, 될수 있으면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요리를 해 먹지 않습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대부분 배달을 시켜야 합니다.

학교에 좋은 급식지원 회사가 연결되면 좋겠지만, 그 또한 필요하면 때가 있으리라 믿고 있습니다. 아니, 그냥 이런 방법에 먼저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항상 필요할 때면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이 연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학생이 원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그것이 무엇이건 배달을 시킵니다. 평점 4.8 이상, 100개 리뷰에 해당되고, 가급적 집밥 느낌이 나는 곳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습니다. 어찌됐건 무엇을 먹건, 학생과 같이 밥먹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식탁을 나누어 먹는 것이 성찬의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밥을 먹을 때, 학생은 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그렇게 ‘밥친구’가 됩니다.

학교에서 주시는 밥값 카드가 있지만, 학교 운영비 걱정에 밥값은 제 지출로 대부분 처리합니다. 한국에서 배달 음식은 최소 비용과 배달비가 책정돼, 당연히 2인 이상을 시켜야 합니다.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대부분 2만원이 나가기 쉽습니다. 가끔 간식도 먹습니다.

제가 먹는 것도 아닌 학생이 먹는 것이라, 적당한 것을 시킬 수도 없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자기 자녀 급식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예민합니다. 학생이 원하는 음식을 시켜주되,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는 이유입니다.

당연히 밥값도 많이 나갑니다. 저는 사례비의 대부분을 넘어, 빚을 진 채 사역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결혼을 포기한게 얼마나 잘한 짓인지 싶습니다.

그런데도 즐거운 것은 저는 원래 빚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빚을 주님이 탕감해 주셨음을 너무 잘 압니다. 학생에게 그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빚진 자가 된다는 것은 빛나는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희 학교에는 방학이 따로 없습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가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원하면 매일이 방학입니다. 스케줄 자체가 천천히 가서, 방학을 따로 두면 공백에 따라 차질이 생기기도 하지만, 학생이 학교를 너무 좋아합니다.

저는 한 명의 학생이 오건 안 오건, 그 날 하루종일 기다립니다. 정해진 등교시간에 제대로 오는 날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다립니다. 제가 할 일은 가르치기 전에 기다림이라는 것을 주님께서 가르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약속을 거의 못잡습니다.

정해진 수업 스케줄은 학생과 함께 의논해서 계획합니다. 매일 스케줄도 학생의 상태에 따라 변동됩니다. 그런데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입니다.

학생이 예배 인도를 하게 하기도 합니다. 찬양예배를 만들고 찬양을 나누기도 합니다. 주체적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을 한 비인가 대안학교들에게 올해부터 서울시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신청을 상담했더니 예배가 있으면 안 된답니다. 행정적으로 없는 것으로 신청하면 된답니다.

그냥 끊었습니다. 화낼 필요도 없습니다. 이의신청도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논리에 일일히 따질 필요 없습니다. 그냥 제가 제 자리에서 정직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예배임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8. 코로나19가 발생해서 모든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잠시 고민했지만, 저희 학교는 지금도 운영합니다. 올해 고3이 된 한 명의 학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볼품없는 저와 그저 예수님만 잘 믿고 예배가 중요하다는 학교를 믿고 수없이 많은 시간을 아픔과 눈물로 왔는데, 코로나19가 왔다는 이유로 그토록 긴 시간을 홀로 있게 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간단히 결론이 났습니다.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수익성 카페의 문을 닫는 것이었습니다. 학생에게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 이 공간에서의 외부 모임을 다 중지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수익과 인기 모두를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카페가 문을 닫은지 벌써 한 달이 넘어갑니다. 능동적으로 결정했습니다. 학생이 오면 마스크를 쓰고 예배드리고, 하루 일과를 하고 돌려보냅니다.

현재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카페를 열지 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교회를 폐쇄하는 논리만으로 보자면,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마스크를 하기 힘든데다 가까운 곳에서 말이 오가니 전염의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한 명의 학생을 위해, 정부의 이행지침을 우리는 어찌 보면 반대로 이행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생명을 존중하는데 더 보탬이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판단을 두고 마을 사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 한마음으로 달꿈학교의 쿰 카페가 빨리 열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청소를 위해 한 번 카페 문을 열었을 때, 자주 오던 지역의 어린이와 가족이 오셔서 “달꿈이 문을 여니까 동네가 밝아졌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웃으니까 “진짜예요! 정말!”이라면서 몇 번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포기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고, 지키고자 한 것이 무엇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 교회들이 가진 불만은 교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일리가 없지 않습니다. 왜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지 않고, 교회만 죄인 취급하냐는 것입니다.

더 많이 모이는 곳들, 카페와 독서실 학원과 수많은 업종들도 있는데, 마치 교회가 코로나의 원흉인 양 몰아세우고, 예배를 강제로 금지시키는 것을 심각한 상태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일정 부분 동의되는 것도 있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소속과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들어와, 사진과 영상을 채집하듯 찍고 가는 것은 확실히 죄인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공간이든 그 공간과 단체의 정신 앞에 존중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이 아쉬운 것도 사실입니다. 차후에 이러한 불시의 감시 같은 모습이나 예배금지등이 악용될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도 아닌데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바로 지금 이 시간,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꺼이 자기 몸을 내어주셨던 그 예수님을 묵상하는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는 그 분을 믿는, 그래서 세상을 사랑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9. 저는 정릉에서 목회를 합니다. 학교는 미아에 있고, 교회는 정릉에 있는데 지하입니다. 저희 교회가 온라인 예배를 드린지 벌써 한 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온라인 헌금을 아직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시스템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민이 되어서 입니다.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예배를 드리면서, 교인들은 각자 가정에서 나중에 모일 때 헌금을 가지고 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에 정했던 하나님 말씀의 정신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세상이 교회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라인 헌금을 세상적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사탄의 모략이 있음을 봤기 때문입니다.

재정이 얼마가 남은지도 모르면서, 대구의 어려움을 그냥 볼 수 없어 총 100만원을 나누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 버티는 것을 보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모이는 예배가 가진 모임의 경건성, 교제의 중요성, 공동체성, 회중 예배의 존재 가치를 전혀 느낄 수 없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저 이러한 고통의 시기에 교회가 모이는 이유를 오직 돈때문이라고만 해석하게 하는 논리 구조입니다.

우리는 신학적 정당성을 고집하기보다, 오히려 자기의 몸을 포기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모이는 예배의 중요함을 설파하는 다른 교회나 목회자 분들의 순수한 의도 또한 존중합니다.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10. 저는 이 기간이 더 길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교회, 가톨릭도 마찬가지로 모이는 날자를 확정지었지만, 저희 교회는 4월 6일이 되어도 확진자가 줄지 않거나 계속 세상이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면 온라인 예배를 연장할 생각입니다.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때가 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온라인 예배를 위한 헌금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 또한 제가 결정하지는 않으려 합니다.

4월 6일을 넘어서 생명이 여전이 아프면, 그 아픔에 동참하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부활주일이 되어도 생명이 소중한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하필이면 교회 이름도 생명샘이거든요. ^^ 그때까지 헌금이 없으면 사실 교회가 휘청거릴만큼 위기란 것도 압니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께 던져보고 싶습니다. 정말 그렇게 위기가 닥치면, 그때 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모임이 위기가 올 만큼 자기 몸을 던져 세상을 사랑한다면, 광야로 나갈때 하나님 은혜는 더할 줄 믿습니다.

네, 물론 자유합니다. 주님 안에서 저는 빨리 모이고 싶습니다. 누구보다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저희 생명샘교회는 어디 내놔도 자랑할 만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담임인 것이 행복하고, 성도 누구도 잃고 싶지 않습니다.

11. 그러나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하나님께 드렸던 고백을 저는 잃고 싶지 않습니다. “목사님 비전이 뭡니까?” 선배 목사님들께서 물으실 때입니다. 대답을 하시는 다른 목사님들께서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저는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고기 일화를 이야기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기 먹는 것의 올바른 교리를 설파하고,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이 주님 안에서 자유하나, 나는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사도 바울같은 사람이 고기 먹는 것을 보고 믿음을 실족한다면 영원히 고기 먹지 않겠다고 한 것처럼, 저도 믿음이 연약한 자들, 한 사람을 위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자유함과 권리를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목숨 걸고, 생명샘교회가 제 선교지입니다. 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생명샘교회가 세상을 향해 목숨걸 줄 아는 교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저같은 사람을 사용하시는 주님 앞에, 그런 저를 위해 당신의 몸을 피흘리신 주님께 보답하는 작은 길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게 해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곧 부활주일이 다가옵니다. 글이 길어졌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들과 목회자 분들 너무나 깊은 고민과 상념, 그리고 고통 가운데 예배의 회복을 위해 애쓰는 것을 잘 압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더불어 이 편지를 받는 모두 사랑의 마음으로 함께 기도하십시다.

“빨리 모이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이 땅에 고통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안에 참 자유함과 평안이 오기를.

이 땅에 고통이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삶이 주님께 오프라인, 그리고 교회들 간의 오프라인, 건물과 건물이 서로 오프라인…. 결국 세상과도 오프라인으로 살면서 삶의 예배가 죽어버린 지난 날들을 철저히 회개하는 우리가 되십시다.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어떤 예배건, 그 예배가 삶의 예배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여러분 모두 고된 시간을 잘 견디고 계심에 존경과 사랑을 전합니다.

류한승 목사(생명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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