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영남대로 과거길 이야기 – 기독신문


[오현태 목사의 오목조목 대구골목 이야기]

조선시대에 영남지역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려면 동래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꼬박 14일이 걸렸다고 한다. 한양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령이나 추풍령 혹은 조령이라고도 불리는 문경새재 중 하나를 선택해서 넘어야만 했는데,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령(竹嶺)은 대나무고개다. 미끄러운 대나무 껍질은 선비들에게 피하고 싶은 금기와도 같았다. 즉 과거시험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죽령은 피했다. 그럼 추풍령은? 그렇다.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기 싫었던 것이다. 출세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하다보니, 이런 징크스까지 만들어내었다.

영남대로 옛 과거길은 출세를 열망하는 이들이 걷던 길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같은 길을 걸으며 오직 복음만을 생각했다.
영남대로 옛 과거길은 출세를 열망하는 이들이 걷던 길이었다. 하지만 선교사들은 같은 길을 걸으며 오직 복음만을 생각했다.

영남대로 과거길은 동래에서 밀양, 청도, 대구, 상주와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에 이르는 먼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 모두가 한양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도 아니었다. 멀고 험한 길에 탈이 나서 한양까지 못가는 경우도 있었고, 산적들이나 맹수들의 위협으로 과거길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선비들이 한양까지 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유혹과 쾌락 때문이었다. 기생들에게 빠져 아예 대구에 머무르는 한량들도 많았다. 과거에 붙을 자신이 없거나, 유혹에 무너진 선비들은 대구 기생집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무르며 허송세월을 하다 돈이 다 떨어져서야 고향으로 돌아갔다. 선비들에게는 험한 길의 위협보다 달콤한 유혹이 더 무서운 장애물이었다.

그렇다면 1890~1900년 사이, 대구에 왔던 선교사들에게 옛 과거길은 어떤 의미였을까? 대구 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한 베어드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했을 때, 그는 29살의 창창한 나이였다. 그의 아내 애니 베어드는 불과 27살이었다. 베어드의 뒤를 이어받아 ‘대구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스 선교사 역시 28살 나이로 조선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오직 복음을 위해 조선에 왔다.

대구 초기선교사들이 영남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이 걸었던 길도 영남대로 과거길이었다. 부산에서 상주까지의 과거길이 복음을 위한 대로로 바뀐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 어찌 위협이 없었으랴. 크고 작은 유혹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선교사들은 출세나 입신양명 같은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사람들이었다. 크고 작은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유혹과 쾌락에 한 눈 팔다 넘어지지도 않으면서 영남대로 과거길을 걸었다.

구(舊) 대구제일교회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영남대로 과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선교사들의 첫 열매이자, 대구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가까이에 출세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영남대로 과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이러니 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한 길을 걷고 있을까? 내가 높아지기 위함인가, 복음을 높이 드러내기 위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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