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우한코로나 사태는 정치권의 무능과 만연한 이기주의가 빚은 부조리극” – 조선닷컴


입력 2020.03.10 14:50
| 수정 2020.03.10 14:56


伊 정계, 우한 코로나 발생 이전부터 ‘혼돈’
보건당국도 세력싸움 휩쓸려 갈팡질팡
교도소에선 ‘면회 금지’ 불만 품은 재소자 폭동도

정쟁(廷爭)에 몰두하는 정치가, 이기적인 국민, 특종에 눈이 먼 언론과 인기에 눈이 먼 가짜 전문가, 어찌할 바 모르는 보건당국이 빚어낸 현실판 부조리극(不條理劇).

이탈리아가 멈췄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간판은 우한 코로나 앞에서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10일부로 전국 모든 지역에 대해 이동제한령이 발효하고 모든 문화·공공시설을 폐쇄했다. 사실상 ‘국가 봉쇄’다.

해외 언론들은 전례없는 강도 높고 과감한 조치에 박수를 쳐주기 보다 ‘확진자가 1만명에 육박할 동안 대체 무엇을 했냐’며 이탈리아를 두고 ‘유럽의 우한’이라고 스스럼없이 깎아내리고 있다. 이탈리아는 어쩌다 이런 오명을 안게 됐을까.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이탈리아 사회에 만연한 무사안일주의와 아마추어리즘, 심각한 이기주의가 확산의 배후라고 꼽았다.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관광지 콜로세움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로마의 유명 관광지 콜로세움을 마스크를 쓴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이탈리아 정계는 우한 코로나가 덮치기 전인 작년 말부터 이미 혼돈에 빠져 있었다. 작년 9월 연립정부를 이끄는 극우정당 ‘동맹’과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은 극심한 갈등을 빚은 끝에 붕괴했다. 극우정당 자리는 중도좌파 성향 민주당이 대신 차지했고, 새 연정을 구성해 국정을 이끌었지만 재산세와 난민세, 형사법 개정안까지 사사건건 무탈히 넘어가는 사안이 없었다.

이 와중에 우한 코로나가 닥쳤지만, 출범한지 막 4개월에 불과한 아마추어 내각은 기민한 대처방법은 내놓지 않은채 연일 정쟁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는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1월 말 자국에서 중국인 관광객 첫 확진자가 나오자 오는 4월까지 중국 등을 오가는 직항 노선 운항을 중단시켰다. 그러나 다른 유럽 국가를 경유해 육로나 항로로 입국하는 중국인은 막지 않았다.

유명무실한 입국 제한 조치를 내리고 정치권이 투닥거리는 동안, 북부 롬바르디아주(州)와 에밀리아 로마냐주를 중심으로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겉잡을 수 없이 늘었다. 이탈리아에는 중국인 32만명 정도가 사는데, 대부분 섬유 산업에 종사하며 산업 중심지인 북부 지역에 몰려 산다.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밀라노와 밀라노가 속한 롬바르디아주에만 중국인 8만명이 산다.

심지어 새 연정 구성에 산파(産婆) 역할을 한 니콜라 진가레티 민주당 대표는 7일 우한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유럽 주요국 정치지도자 가운데 첫 감염 사례다. 진가레티 대표가 평소 각 부처 장관을 포함해 정부 고위 관계자들을 수시로 만나는 터라 이탈리아 내각 내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콘테 총리는 혼란에 빠진 이탈리아를 진정시키지는 못할 망정 무책임한 처신으로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콘테 내각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을 막기 위해 10일 광범위한 봉쇄령을 내리는 극약 처방을 했다.








 9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 모데나에서 폭동 진압 전문 경찰 병력이 산타 안나 교도소 주위를 감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9일 이탈리아 에밀리아 로마냐주 모데나에서 폭동 진압 전문 경찰 병력이 산타 안나 교도소 주위를 감시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이 봉쇄령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이탈리아 정부가 롬바르디아주를 비롯한 북부와 동부 16개 주를 봉쇄하려 한다’는 상세한 내용이 담긴 법안 초안을 발효 이전에 보도했다.

우한 코로나 확진자가 몰려있는 북부 지방을 봉쇄하려던 계획이 발효 전날부터 언론에 의해 새어나가면서 놀란 북부 주민들이 대거 자동차·기차·비행기를 타고 남부 지방으로 탈출했다. 이탈리아 전역은 아수라장이 됐다. 교도소에서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내린 면회 금지 명령에 불만을 품은 재소자들이 교도관들을 폭행하는 폭동을 일으켰다.

장화 모양을 닮은 이탈리아의 ‘구두굽’에 해당하는 풀리아주 주지사 미켈레 에밀리아노는 “북쪽의 형제들, 코로나 바이러스를 남쪽의 누이, 형제, 사촌,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가져올 셈입니까. 차를 돌려 돌아가세요. 기차를 탔다면 다음 역에서 내리세요”라고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영국 가디언은 이 행정명령에 서명한 발테르 리키아르디 이탈리아 보건부 고문을 인용해 “콘테 총리가 행정명령에 대한 동의를 얻기 위해 지자체에 초안을 회람시키는 과정에서 누출됐을 것”이라며 “이런 일은 이탈리아 국민들이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공황에 빠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비밀리에 진행해야 한다”고 전했다.

보건당국 역시 사망자를 한 사람이라도 더 줄여야 할 시간에 세력 싸움에 휩쓸려 갈팡질팡하는 모양새다. 가장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롬바르디아주 보건 당국은 무증상 접촉자들까지 철저히 추적해 적극적인 진단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콘테 연정에 끼지 않은 극우 성향 ‘동맹당’ 소속 아틸리오 폰타나 주지사가 내린 방침이다.

그러자 콘테 총리를 중심으로 한 집권 내각은 이 점을 꼬집어 ‘롬바르디아 주정부가 과도한 진단 검사로 확진자를 늘려 위험을 부풀리고, 정권을 흔들려 한다’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콘테 내각 최대 정적(政敵)인 마테오 살비니와 폰타나 주지사 역시 이 점을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이들은 ‘집권 세력이 전염병 창궐의 정치적 책임을 덜기 위해 검사 기준을 꼬투리 잡고 있다’고 반박하며 “콘테 총리는 위기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맞섰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주에 설치한 우한 코로나 임시 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의심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 로마냐주에 설치한 우한 코로나 임시 진료소에서 의료진이 의심 환자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국가비상사태에서 키를 쥐어야 할 정치권이 다툼에 골몰하는 사이, 현지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현재 밀라노 일대 병원에는 병실이 모자라 수술실과 회복실은 물론 병원 복도에까지 환자들이 누워 있는 장면이 TV 뉴스에 나왔다. 안토니오 페젠티 롬바르디아주 위기대응팀장은 현지 인터뷰에서 “의료 체계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했다. 군 최고사령관인 살바토레 파리나 육군 참모총장마저 확진 판정을 받았다.

포린 폴리시는 “최근 이탈리아에서 의료 전문가를 자청하는 논객들이 TV와 인터넷에 나와 ‘코로나 바이러스가 그저 독감보다 조금 심각한 질병일 뿐’이라는 낭설을 퍼뜨리기도 했다”며 “전례없는 바이러스 공세에 보건 당국이나 의료계가 흔들리는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나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는 기괴(bizarre)할만큼 유럽 선진국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정도로 총체적 난국을 겪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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