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등산사] 코로나19 속 하루 3만명 찾는 이곳…“숨 좀 쉬러 왔다”


이렇게 시작한다. ‘산은 항상 그곳에 있다’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을 갖고 있다. ‘당장 산에 갈 수 있다’와 ‘상황을 봐서 나중에 갈 수 있다’로. 
 

작년보다 늘어난 북한산 탐방객
가족·개인 단위 평일 방문도 증가

불안감 속 마스크 쓴 채 산 올라
접촉 많은 대중교통 대신 자가용

“숨 막히지만 코로나19 때문에 꼭 써야죠.”

지난 1일 북한산 원효봉.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A씨는 서암문(시구문)에서 원효암으로 이어지는 계단 길을 오르고 있었다. 등산화와 재킷·모자·스틱·배낭 등 ‘필수장비’를 정갈하게 갖췄다. 그가 최근 산행 중 반드시 챙기는 장비가 있다. 마스크다. 

지난 2월 29일과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 새마을교 근처애서 등산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2월 29일과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 새마을교 근처애서 등산객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걸어가고 있다. 김홍준 기자

이 코스는 계단이 수백 개 이어져 가쁜 숨을 토해내야 한다. A씨는 “산이라 코로나19 감염 우려는 시내보다 덜하지만, 불안감은 여전하다”며 “마스크를 쓰고 올라가는 힘겨움이 불안감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가 등산 풍경을 바꾸고 있다. 숨 턱턱 막혀도 마스크를 쓰고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해 산의 밑동에 닿는다. 게다가 현장과 통계로 본 북한산은 예상 밖이었다.
 
# ”코로나19 피해서 왔어요”
먼저 눈에 띄는 건 코로나19에도 탐방객이 되레 많아졌다는 것. 오건흥 국립공원공단 과장은 “2월 북한산 탐방객이 작년보다 감소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늘어나 의외”라고 말했다.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문의해 보니 지난 2월 29일(토)엔 1만7821명이, 3월 1일(일)에는 1만8820명이 북한산(도봉산 제외)을 찾았다. 지난해 3월 첫 주말인 2, 3일(각각 1만1213명, 1만4504명)보다 각각 59%, 30% 늘어난 수치다. 
 
날씨를 고려하면 지난해 같은 기간이 산행에 훨씬 적합했는데도 올해 더 많은 사람이 찾았다(그래픽 참조). 2월 전체를 보면, 도봉산까지 아우르는 북한산 국립공원에는 올해 탐방객(40만1593명)이 지난해(35만4925명)보다 5만 명 가까이 많았다. 23일에는 3만 명 넘게 산을 찾기도 했다. 올해 2월이 윤달이라 하루가 더 많았지만, 지난해에는 설 연휴가 닷새(2월 2~6일) 이어지는 ‘호재’가 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탐방객이 급증한 셈이다. 

북한산 산성입구에서 5년째 분식점 ‘숙이네’를 운영하는 이재근(58)씨는 “코로나19 탓에 한산할 줄 알았더니 요새는 평일에도 가족 단위 산행객이 많다”고 말했다. 북한산·도봉산의   2월 주 중(설 연휴 제외)에 탐방객 1만 명이 넘는 날이 지난해에는 하루였다. 올해는 열흘이나 된다. 왜 북한산 국립공원에 탐방객이 몰릴까.

  
9살 아들과 함께 온 서울 은평구 구산동의 B씨는 “애 아빠는 휴일이지만 재택근무 중이라 못 왔고 애가 지난 일주일간 공부방에도 못 가고 집안에만 있다가 함께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목동에서 온 20대 부부는 “코로나19 탓에 헬스장·극장·놀이공원은 물론 교회도 못 가니 하도 답답해서 결혼 후 첫 산행을 오늘 오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4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간 전국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응답자의 59.8%가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상이 정지된 것으로 느낀다’고 답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무기력과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것이다. 백종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재난정신건강위원장은 ” 만성 스트레스는 면역력을 저하한다는 여러 연구가 있는데,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 한양대 관광경영학부 교수는 “보건당국이 권고하는 대로 밀집된 실내 활동은 피하되, ‘거리 두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경관과 변화를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산이나 야외를 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감염 우려로 인한 밀폐공간에 대한 두려움, 타인과의 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 여유 공간 선호가 맞물리고 자연을 통해 감염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는 말이다.

코로나19 사태 속 시민들이 북한산을 찾고 있다. 지난 2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왼쪽)를 통해 탐방 중인 사람들과 3월 1일 산성입구 2주차장 만차 표지판 모습. 김홍준 기자

코로나19 사태 속 시민들이 북한산을 찾고 있다. 지난 2월 29일 북한산 산성입구(왼쪽)를 통해 탐방 중인 사람들과 3월 1일 산성입구 2주차장 만차 표지판 모습. 김홍준 기자

# 자가용 이용한 탐방로 방문 늘어

지난 2월 29일과 3월 1일, 3호선 구파발역에서 버스로 환승할 때까지 탐방객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산 산성입구(은평구 진관동)에 도착하니 주차장에는 차량이 가득했다. 산 입구와 가까운 2주차장은 연이틀 ‘만차’ 표지판을 내걸었다. 그 밑의 1주차장에는 4분의 3 넘게 찼다. 북한산 국립공원에 의하면 2월 29일에 666대, 3월 1일에 782대가 들었다. 지난해 3월 첫 주말인 2일(토)에는 392대, 3일(일)에는 424대였다. 올해 각각 70%, 84% 증가한 것이다. 같은 날을 비교한 북한산 탐방객 수 증가율(59%, 30%)을 넘는다. 
 
서울 용산에서 가족을 데리고 온 C(45)씨는 “대중교통보다 자가용을 이용하는 게 편하기도 하고 코로나19 감염 걱정에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 숨 턱턱 막혀도 마스크는 쓴다
‘공포의 원효암 계단’에서 꿋꿋이 마스크를 착용한 이는 A씨뿐만 아니었다. 이날 만난 60대 부부, 20대 커플 등 20명 중 10명이 오르막에서 거친 숨을 감수하면서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내리막에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더 높았다. 10명 중 7명꼴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하지만 부천에서 온 김명학씨는 “마스크를 쓰고 산에 오르면 건강에 더 안 좋을 것”이라며 착용을 하지 않았다.
미세먼지·황사가 심해 마스크를 쓸 정도의 날에는 산을 찾는 사람 자체가 적다는 게 국립공원 관계자의 말이다.

지난 3월 1일 한 등산객이 마스크를 쓴 채 북한산 원효봉 꼭대기에 다다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1일 한 등산객이 마스크를 쓴 채 북한산 원효봉 꼭대기에 다다르고 있다. 김홍준 기자

# ‘단체’ 줄어든 대신 개인·가족 단위.
이맘때는 한해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산악회 시산제가 곳곳에서 열린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취소·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한 산악회 회장은 “많은 사람이 한 번에 밀집하는 불안감 때문에 올해는 건너뛴다”고 말했다. 단체 산행공지도 줄었다. 17개 시·도 구조대원들이 모여 울릉도에서 열기로 한 대한산악구조협회 동계훈련은 서울·제주 구조대만 한라산에서 모여 실시했다. 나머지 구조대는 별도의 동계훈련을 가졌다.
 
대신 소규모 혹은 개인·가족 단위로 산행이 늘었다. 이승희(41)씨는 “코로나19 때문에 ‘확신’이 가는 친밀한 사람 아니면 불안하다”며 “아예 혼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산행 전문가 최석문(48·노스페이스 클라이밍팀)씨는 “2인 이상 함께 산행하는 것이 안전하지만 정 혼자 갈 땐 산행보다 산책 수준의 쉬운 코스를 골라야 한다”고 말했다. 
 
# 5m 이상 떨어져 끼니 해결
등산객들은 통상 봉우리 정상이나 평평하고 트인 공간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의식한 탓인지 북한산 원효봉 정상에서 5m 이상 뚝뚝 떨어져 앉았다. 옆자리 사람들과 합석하거나 음식 권하는 모습도 없었다. 
 
한 등산객은 “때가 때이니만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게 서로 편하다”고 말했다. 탐방객이 많은 만큼 식당에는 손님도 꽤 있었다. 배낭 12개가 큰 여닫이창 밖에 나란히 정리된 곳도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은 다른 손님과 엇갈려 앉기 위해 식당 출입문을 열고 내부를 한참 둘러봤다.
 
# 국립공원도 소독…대피소 폐쇄
미국에서 온 브래넌(23)은 ‘북한동역사관’ 옆 화장실을 사용한 뒤 세정제를 주머니에서 꺼내 손을 싹싹 닦았다. 그는 “만약을 위해서 바른다”라고 했다. 마침 북한산 국립공원 직원이 화장실 소독 중이었다. 

지난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산성입구. 주차장과 상가에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해 있다. 김홍준 기자

지난 3월 1일 북한산 원효봉에서 바라본 북한산 산성입구. 주차장과 상가에 차량들이 빼곡히 주차해 있다. 김홍준 기자

김종희 국립공원공단 탐방복지처장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손세정제를 곳곳에 비치했고 탐방객들이 잠깐이라도 모일 수 있는 화장실은 소독을 강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립공원공단은 이달 15일까지 지리산 장터목, 설악산 중청 등 대피소 14곳의 운영을 중단한다.생태탐방원·야영장·민박촌 등도 폐쇄했다. 북한산역사관도 임시 폐쇄된 곳 중 하나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이번 조치가 연장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립공원 자체는 코로나19의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폐쇄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사랑하는시민들의모임(국시모) 국장은 “코로나19 장기화 국면에서 탐방객들은 자연을 찾는 것을 안전하다고 여기는 것으로 보이는데, 당분간 이런 행동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사방이 트인 국립공원이라도 공동시설(화장실·데크 등)에는 탐방객들이 밀집할 수 있으니 손 씻기와 마스크 착용, 거리 두기 등은 꼭 지켜야 한다”며 “공단에서도 코로나19 안전지침 홍보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속 10명은 전염병이 퍼지고 있는 피렌체 도심에서 벗어나 교외로 접어든다. 그들은 이야기보따리를 펼친다. 숨을 돌리며. A씨의 마스크 속 가쁜 숨은 코로나19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은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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