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로 보는…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한 성경적 관점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정성욱

▲정성욱 교수.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폐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전 세계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현 정부의 안일하고 무책임한 대응으로 대한민국이 직격탄을 맞았고, 악성 이단 신천지 신도들의 부주의함으로 인해 대구·경북 지역을 포함한 전국이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미국에서 조국의 현 상황을 지켜보는 필자의 마음은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쓰리고 아프다.

필자는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 공의, 진노에 대해 분명한 성경적 관점을 확립하는 것이 매우 필요하다고 믿는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번 사태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과 연결해서 이해해 왔다. 일리가 있는 관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이 정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극단적이고 무절제한 혐오와 정죄를 타인에게 돌리는 우를 범해왔다.

필자는 이 짧은 글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 공의, 진노, 심판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라는 개념은 인기 없는 개념이 되어 버렸다.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는 기피 대상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긍휼 등은 더욱 강조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말하거나,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귀를 막아 버린다. 듣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말씀하는 만큼, 하나님의 공의와 진노와 심판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하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선적으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속성은 하나님의 거룩성이라는 본질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거룩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돼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완전한 구별성이다.

하나님과 피조물은 영원히 구별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고 피조물이 아니다. 피조물은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는 영원한 구별이 있다.

우리 인간이 장차 부활하고 영화되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질과 같은 형질을 가지게 된다 하더라도,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의 영원한 구별은 변함없이 존재하게 된다.

하나님은 영원히 무한하신 분으로 남으실 것이나, 우리는 여전히 피조적 존재로 남을 것이다.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주인이 되실 것이나,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의 소유로 남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근본적으로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성이 가지는 둘째 차원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무결성을 의미한다. 윤리적 절대 순수성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을 뜻한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악을 떠나 계시며, 죄를 미워하시고, 절대적으로 선하신 것만을 의도하시고, 인준하시고, 추구하신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인 주권으로 악의 세력을 통치하시고, 경계하시고, 때로는 허용하시지만, 그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선한 의도에 따라 행하신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범죄하도록 유혹하지 않으시며, 유혹을 받지도 않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성이 가지는 둘째 차원이다.

이런 도덕적·윤리적 절대 완전무결성에서 하나님의 의와 공의가 도출된다.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이 내적으로 가지고 계신 속성이라면, 하나님의 공의는 선한 것을 선하다고 하시고, 악한 것을 악하시다고 하시는 공적, 정죄적 의이다.

하나님은 결코 선과 악을 혼돈하실 수 없다. 선한 것을 악하다 하시고, 악한 것을 선하다 하실 수 없다. 이것이 하나님의 정죄적 공의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죄적 공의는 죄와 악에 대한 공의로운 진노를 함축한다. 하나님은 악한 것을 단순히 악하다고 정죄하시는 차원을 벗어나서, 악한 것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그 진노하심에 기초해 심판과 형벌을 시행하신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속성은 악과 죄에 대한 정죄와 진노와 심판을 낳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는 그 죄악에 대해 형벌을 내리는 것으로 표현된다. 노아 시대에 인간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찼을 때, 하나님은 물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그 땅을 유황불로 심판하셨다.

애굽 땅에 죄악이 관영했을 때, 하나님은 10가지 재앙을 내려 애굽 땅을 심판하셨다. 가나안 땅의 죄악이 관영하고 가나안 땅이 죄악으로 가득찼을 때, 하나님은 그 땅에 대해 공의로운 진노를 표현하셨다. 그것은 어린 아이를 포함한 모든 산 자에 대한 심판과 형벌이었다.

어린 아이를 포함한 모든 산 자를 죽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적, 형벌적 명령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의 표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사로운 결정이나 변덕스러움의 표현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원칙을 준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 선하심과 거룩하심과 의로우심이 공적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경의 하나님은 거룩과 의의 원칙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의 제물로 희생시키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무원칙적인 변덕꾼이었다면,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제사도 없이 그냥 우리를 향하여 ‘무죄’라고 선언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계시하는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그런 무원칙적인 변덕꾼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원칙을 지키시는 선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죄악에 대해 진노하시고, 그 진노를 형벌과 심판이라는 방식으로 드러내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우한 코로나 폐렴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사태가 일어난 유일무이한 이유가 교회를 핍박하고, 시진핑 우상화 작업을 해온 중국에 대한 심판이라는 일부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가 일어난 많은 이유들 중 하나가, 중국인의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와 심판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이 사태로 인하여 우리 대한민국이 직격탄을 맞은 것은 정부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대응과 신천지의 부주의함 탓이었음도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태를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신천지가 악질적 이단임을 잘 알고 있고, 신천지 신도들의 태만함으로 인해 사태가 커졌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우선적으로 우리 자신을 성찰해 봐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교회들이, 그리고 우리 각자가 어디에 서있는가를 돌아봐야 한다.

그 성찰에 기초해서,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과 가슴을 찢는 회개로 나아가야 한다. 이 사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 싶어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궁구(窮究)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경청과 순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우한 코로나 폐렴 사태를 대하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가 돼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교회적으로든 성숙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이 돌려지게 될 것이다.

정성욱 박사
美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저서 <티타임에 나누는 기독교 변증>, <10시간 만에 끝내는 스피드 조직신학>, <삶 속에 적용하는 LIFE 삼위일체 신학(이상 홍성사)>,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종교개혁 키워드>, <한눈에 보는 십자가 신학과 영성>, <정성욱 교수와 존 칼빈의 대화(이상 부흥과개혁사)>, <한국교회 이렇게 변해야 산다(큐리오스북스)>, <밝고 행복한 종말론(눈출판그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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