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건 목사의 제주교회이야기] (13)제주노회 – 기독신문


예장합동 제주노회와 구 예장개혁 제주노회가 제80회 정기회를 함께 열며 합동을 선언하는 모습.
예장합동 제주노회와 구 예장개혁 제주노회가 제80회 정기회를 함께 열며 합동을 선언하는 모습.

제주노회가 조직된 것은 1930년의 일이다. 독노회가 이기풍 목사를 선교사로 보내 제주선교가 시작된 지 22년 만에, 제주의 교회들은 더 이상 ‘선교지 교회’가 아니라 독자적인 지역노회를 운영하며 총대를 파송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일원으로 어엿이 우뚝 선 것이다.

제19회 총회에서 전남노회가 청원한 제주노회 분립안이 가결됨에 따라, 1930년 11월 14일 제주성내교회에서는 17개 교회 목사·장로들과 선교사들이 자리를 함께 한 가운데 첫 제주노회 정기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자리에서 초대 노회장으로 최흥종 목사가 선출됐다.

분립 후에도 제주노회는 열악한 재정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계속해서 총회와 전남노회 전북노회 순천노회 등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성경학원 개설과 청년면려회(CE) 조직을 통해 꾸준히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선교사들의 헌신과 부인조력회(여전도회) 등의 활약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워나갈 수 있었다. 이를 기반 삼아 6년 후에는 교회 숫자가 20개 처, 성도들의 숫자가 1534명에 이르는 등 노회의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하지만 일제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제주노회는 1938년 4월 26일 제주 삼도리교회에서 열린 제9회 정기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만다. 이때부터 제주에는 영적 암흑기가 시작되었고, 결국 제주노회는 1943년 6월 10일 해산되는 고통을 겪는다. 해방 후에는 잇따른 장로교의 분열 속에서 제주의 전체 장로교회가 기장과 예장통합에 소속된다.

이처럼 다시 불모지처럼 변해버린 제주선교에 예장총회가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주노회 해산 후 약 30년이 지나서였다. 1970년 제55회 총회에서 제주노회 복구를 위해 정규오 홍근섭 김일남 목사 3명을 세워 위원회를 조직했고, 이들의 수고로 제주노회가 재건된다. 이어 2005년에는 예장개혁과 교단 합동이 이루어지며, 양 교단 소속 제주노회도 하나로 합병했다.

오랜 세월 각자의 울타리에서 지내온 두 노회를 합치는 작업은 만만치 않았지만, 사전에 ‘비전트립’이라는 이름으로 수도권의 주요 기독교유적들을 돌아보는 순례여행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전체 노회원들이 마음을 합해 순조로운 합병으로 이어지는 결실을 얻을 수 있었다.

2006년 4월 4일 토산교회에서 열린 제주노회 제80회 정기회에서는 38교회 목사 장로들이 모인 가운데, 양 노회의 박창건 김병운 두 노회장이 합동을 선포하는 동시에 이우근 목사를 신임 노회장으로 세우며 새로운 출범이 이루어졌다.

어느덧 제107회기를 맞이한 제주노회에는 현재 전체 42개 교회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중이다. 절반가량이 미래자립교회인 취약한 구조이지만, 감사하게도 황해노회나 광염교회(조현삼 목사)처럼 꾸준히 힘이 되어주는 동역자들이 존재함으로 제주의 교회들은 계속해서 복음과 선교를 위해 매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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