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시리아는 트럼프의 분풀이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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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미국의 공습을 받은 시리아에 관한 뉴스를 보다 보면 헷갈리기 쉽다. 누구와 누가 싸우는 것인지 얼른 정리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대결하는 것은 확실한데, 미국과 러시아가 누구를 편드는 것인지, 미국과 러시아는 같은 편인지 다른 편인지, 이슬람국가(IS)는 누구랑 싸우는지 쉽게 파악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뉴스 시청자 책임이 아니다. 뉴스 공급자 책임도 아니다. 시리아 문제의 구도 자체에 책임이 있다. 좀 복잡한 구도다.

2011년 1월 튀니지에서 재스민 혁명이라는 시민혁명이 시작됐다. 사막의 모래바람이 동쪽을 향해 맹렬히 몰아치듯, 시민혁명 열풍이 동쪽의 리비아·이집트·시리아·바레인·예맨 등을 강타했다. 이를 계기로 시리아는 정부군과 반정부 세력의 내전에 휘말렸다.

시리아에서는 1971년 하페즈 알 아사드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킨 뒤 대통령이 됐고, 2000년부터는 아들인 바샤르 알 아사드가 그 직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의 정치 기반은 이슬람 다수파인 수니파가 아니라 소수파인 알라위파(시아파 분파)다. 알 아사드 가문은 군대와 비밀경찰의 힘으로 이런 열세를 극복했다. 자연히, 국민의 불만이 누적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불만이 재스민 혁명과 맞물리면서 시민혁명으로 발전하고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약 1000만 명이 집을 떠나 피난 생활을 하고, 그중 400만 명 정도가 국외로 피해 난민이 됐다. 이로 인해 주변 국가들뿐 아니라 유럽까지 난민 문제로 압력을 느끼고 있다.

기원전 29년 이후로 동아시아가 추워지면서 유목민들이 북중국을 향해 남쪽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이 누적된 끝에, 서기 304년부터 북중국에서 5호 16국 시대(다섯 유목민족에 의한 16국 건설)가 열리고 기존의 중국 지배층이 남쪽으로 밀려났다. 이런 대혼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대규모 민족이동은 광범위한 영역의 정치질서를 바꿀 수 있다. 시리아 난민 문제로 유럽이 고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복잡하다, 시리아

시리아 내전은 정부군과 반군의 대결로 시작됐다가, 러시아·이란이 시리아 정부군을 편들고 미국·터키·이스라엘·사우디·쿠르드족이 반군 편을 들면서 국제전 양상으로 확대됐다. 대한민국은 반군 쪽을 지지하고 있다. 미국이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시리아발(發) 뉴스가 어느 순간 복잡해지기 시작한 것은 IS가 상황에 끼어들면서부터다. 기존에 대립하던 양측의 관계는 이로 인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모두 IS를 싫어한다. 그래서 미국과 러시아는 상호 대립해야 하지만, IS를 생각하면 같은 편에 서야 한다. 정부군과 반군도 마찬가지다. 서로 싸워야 하지만, IS를 생각하면 상황이 미묘해진다.  

기존 행위자들은 IS를 생각하면 동지가 돼야 하지만, IS를 빼고 생각하면 적이 돼야 한다. 이렇게 구도가 복잡하기 때문에, 춘추전국시대 외교관들만큼이나 시리아 내전 당사국의 외교 결정자들도 꽤 복잡한 수 싸움을 해야 한다.

이런 복잡한 구도 속에서 시리아가 러시아와 견고한 협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반군이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는 이유로 정부군이 러시아와 손잡는 것은 아니다. 이미 예전부터 시리아는 러시아와 우호적이었다. 

1918년에 끝난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중동은 영국과 프랑스의 수중에 놓였다. 1945년에 끝난 제2차 대전 이후로는 미국의 지배 하에 놓였다. 이랬기 때문에 과거의 소련이나 지금의 러시아가 중동 국가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기반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소련 공산당의 무신론이 이슬람교의 유일신 사상과 맞지 않은 점도 이에 한몫 했다. 

이런 상황인데도 시리아는 소련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소련 붕괴 뒤의 러시아와도 마찬가지다. 이 점에 관해,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발행하는 <한국과 국제정치> 제32권 제1호에 실린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의 ‘미국과 러시아의 대(對)중동정책 변화 고찰’은 이렇게 정리했다.

“시리아는 1956년부터 소비에트와 군사동맹관계를 유지했고, 냉전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와의 군사적 협력관계에 변화가 없다. 시리아의 방어체계는 대부분 러시아와 상호운용 가능한 시스템으로 구축돼 있다. 특히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 타르투스항과 라타키아 공군기지는 러시아에 있어서 군사적 중요성이 높다.”

지금의 시리아아랍공화국은 1946년 독립했다. 이 나라는 1958년에 이집트와 함께 아랍연합공화국을 결성했다가 1961년 탈퇴했다. 아랍연합공화국을 구성한 그 3년 동안에도 소련과의 협력관계는 유지했다.

16세기 후반 이래로 러시아인들의 욕망 중 하나는 바다로 가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중해도 그들이 가고 싶어 하는 바다다. 시리아가 러시아에 타르투스 해군기지와 라타키아 공군기지를 내준 것은 지중해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요인이다. 이처럼 시리아가 여느 중동 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에 호의적인 데는, 만 34세의 이집트 혁명장교인 가말 압델 나세르한테 매료됐던 1950년대 역사가 중요한 계기가 됐다.

시리아가 러시아에 호의적인 배경

1918년에 태어난 이집트인 나세르는 만 34세 때인 1952년, 청년 장교단을 이끌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왕정 체제를 폐지하고 기존 지배층을 일소하면서 공화국을 수립했다. 그의 정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던 미국은 그와 이집트를 바그다드조약기구(중동조약기구)에 끌어들이려 했다. 1955년 창설된 바그다드조약기구는 중동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런데 나세르는 그 기구에 참여하기는커녕 미국 등 서방세계에 맞섰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소유하고 있던 수에즈 운하도 국유화해버렸다. 서방세계의 적인 소련·중국과도 손잡았다. 공산권과 제휴한 것은 서방세계의 영향력을 배제하고 통일 아랍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그에게 시리아가 적극적 지지를 보냈다. 그의 ‘아랍 통일’ 구호에도 환호를 보냈다. 그런 이유로 1958년 시리아가 아랍연합공화국에 참여한 것이다.

주도권 문제에 불만을 품은 시리아가 3년 뒤 연합공화국에서 탈퇴하기는 했으나, 시리아는 나세르에 매료될 때의 그 생각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맞서 아랍의 자주성을 지켜야 하며, 그러려면 소련과의 전략적 제휴가 필요하다는 판단만큼은 여전히 지키고 있다.

만 52세 때 심장마비로 사망한 나세르를 이어 1970년 대통령이 된 사다트에 의해 이집트가 친미 국가로 변신한 뒤에도, 시리아만큼은 종래의 기조를 고수했다. 구소련 해체로 현저히 약해진 뒤에도 러시아가 중동에서 근거지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소련 흐루쇼프와 함께 서 있는 1964년 당시의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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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시리아는 유라시아대륙 교역의 중심지였다. 이곳에서 지중해·유럽·아프리카·아시아가 만났다. 또 중국에서부터 사막을 통해 펼쳐지는 비단길(오아시스길)의 종착역도 시리아였다.

몽골제국이 세계를 제패한 13세기 이전에는 오리엔트 지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다. 북아프리카·중동과 동유럽의 동쪽 끝부분이 오리엔트를 형성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고대 강국들인 기원전 8세기의 아시리아, 기원전 6세기의 신바빌로니아, 기원전 6세기 후반의 페르시아,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기원전 1세기의 로마가 한결같이 시리아 땅을 차지한 것은 이곳이 중요한 땅이기 때문이다.

오리엔트가 세계의 중심이던 시절에 이곳을 제패한 나라들이 한결같이 시리아를 점령했다는 것은, 고대에는 시리아 점령이 세계 제패를 위한 필수 코스였음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놀드 토인비도 <역사의 연구>에서 시리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때 이슬람권을 지배했던 우마이야 왕조(661~750)의 거점이었던 시리아가 이슬람 문명권 내에서 갖는 의의를 높게 평가했다. 토인비는 이란 사회와 아랍 사회를 이슬람권의 쌍둥이로 규정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마침내 여기서 쌍둥이 이슬람 사회의 어버이격인 사회를 찾아낸 셈인데, 이 사회를 시리아 사회라고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북한·러시아·이란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트럼프

이렇게 무역로나 이슬람 문명 기여도의 측면에서 시리아는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다. 이런 시리아가 미국이 아닌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내세우는 푸틴 입장에서는 중동 전역을 장악하지는 못했어도, 시리아를 자기편으로 만들었으니 어느 정도는 위안을 삼을 만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시리아를 발판으로 중동 전역에 영향력을 팽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터키와 중동국가들의 중간에 있다. 서양이 침략하기 전에 중동을 지배한 나라는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투르크다. 오스만투르크는 러시아의 지중해 진출을 극력 저지했다. 러시아는 오스만투르크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이제, 러시아가 터키 바로 밑의 시리아와 협력하고 있으니, 중동 국가들에 대한 터키의 영향력을 러시아가 견제하기에 유리하다.

미국의 동맹국인 이스라엘 바로 위에 시리아가 있다. 러시아가 시리아와의 동맹을 발판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견제할 수 있는 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거기다가 시리아 덕분에 지중해에 대한 영향력도 일정 정도 확보할 수 있다. 푸틴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시리아와의 동맹이 여간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시리아의 반미 태도는 러시아와의 동맹관계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시리아는 미국이 싫어하는 이란과도 제휴하고 있다. 또 화학무기 커넥션설(說)에서도 나타나듯이 북한과도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니, 미국의 힘과 자존심을 추구하는 트럼프의 미움을 사지 않을 수 없다. 북한·러시아·이란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트럼프는 그 분풀이를 시리아한테 해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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