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노숙과 쪽방생활 하던 어느 장애인 부부의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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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4시반 서울시청 뒤편 서울마당에서 작지만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린다.

꿈도 희망도 없이 서울역 부근에서 노숙과 쪽방생활을 하던 김성호(37) 김진희 씨(30)가 주인공이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지체장애와 시각장애가 있다. 이른바 ‘동작동 쪽방촌’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밥이 아니라 ‘집퍼 사역’을 하는 설수철 목사(51)를 만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꾸몄다. 20일 서울 강남구의 한 웨딩 숍을 찾은 부부와 이들의 정착과 결혼식을 도운 설 목사를 만났다.

●“증인이 많아. 잘 살아야 돼.”

턱시도와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이들은 서로 놀랐는지 한동안 말을 잊었다. 남편은 “아내가 너무 예쁘다. 목사님이 결혼식 얘기할 때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떨렸다”고, 아내는 “오빠, 너무 멋지다”고 했다. 설 목사는 “자식 결혼시키는 느낌이다. 증인이 많다. 동아일보에까지 나면 정말 큰일이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만 가득하게 살라”고 했다.

부부가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2월 28일 오전 10시 반. 설 목사의 하늘문교회 예배 시간이었다. 노숙인이 이용하는 모바일 커뮤니티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기는 했지만 실제 만남은 처음이었다.

“오빠가 앞에서 예배를 돕는데 빛이 나요. 그런데 저를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아내)

“진희가 기억을 잘 해 곤란하게 할 때가 많아요. 예배하다가 아는 척 할 수는 없잖아요.”(남편)

이들은 이후 빠르게 가까워져 부부의 인연을 맺었고, 10월에는 혼인신고를 했다. 설 목사는 융자까지 받아 임대주택을 마련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해줬다. 10여년 이상 무료급식 위주의 봉사활동을 해온 설 목사는 “밥만 먹고 길로 돌아가는 안타까운 모습을 자주 봤다”라며 “집을 퍼주면 그 사람의 심신이 건강해지고 삶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집 사람 칼 들 때가 제일 무서워요.”

진희 씨의 꿈은 어릴 때부터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이었다. 어렵게 새 출발을 했지만 결혼식은 공공근로 등으로 하루 벌어 사는 이들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하지만 이 사연이 설 목사를 통해 작은교회살리기연합대표인 이창호 목사에게 알려지면서 작은 기적이 시작됐다. 이윤미 나누리결혼문화원장이 결혼식을 준비하고, 서울마당에서 전시 중인 ㈜대산공사가 식장을 무료로 빌려주기로 한 것.

첫 꿈을 이룬 부부의 계획은 소박했다. 현재 공공근로와 거리에서 물건을 팔아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성호 씨는 “목사님 도움으로 임대주택에서 살고 있지만 돈을 모아 임대 아파트라도 마련하고 싶다”라고 했다. 사시 등의 시각장애가 있어 직업학교에서 안마 기술을 배우고 있는 진희 씨의 포부는 구체적이다. “TV에서 보면 남편이 퇴근하면 부인이 요리해 맛있는 저녁을 먹잖아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이 말에 성호 씨는 “집 사람이 칼 들 때가 제일 무서워요. 칼이 어디로 갈지 몰라서”라며 손을 저으며 웃었다.

●“이혼해야 할까.”

부부는 복잡한 가정형편과 장애 등의 이유로 노숙생활을 시작했다. 성호 씨는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이후 집안이 어려워지자 ‘너는 나가서 살아야겠다’는 말을 듣고 집을 나왔다. 처음에는 백화점 알바를 하면서 고시원 생활을 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게 점점 큰 부담이 됐다. 진희 씨는 5년 전 집을 나와야 했다. 10명 중 1명꼴이라는 여성의 노숙생활은 더욱 힘들고 위태로웠다. “일단 먹고 살아야 하니까 폐지도 주우면서 살았어요. 자는 게 겁나면 밤새 걸어 다녔습니다.”

이들은 얼마 전 뜻밖에 이혼을 준비하기도 했다. 인연이 끊어진 진희 씨 부친의 차량이 공동소유로 등록돼 있다는 이유로 남편에 대한 정부 지원금과 공공근로가 중지된다는 통보가 왔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부부는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류상 이혼은 하지만 훗날 다시 돈을 많이 벌어 결혼식을 한다는 약속까지 했다. 다행히 차량 문제가 단독소유로 정리돼 이혼은 소동으로 끝났다.

성호 씨는 “장애와 노숙인을 보는 시선이 지금보다 훨씬 차가웠고, 한때 우리나라를 떠나고 싶었다”라며 “지금은 제가 돌봐야 하는 사람이 있어 책임감을 느낀다”라고 했다.

김갑식 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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