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가 친 펜스(미국 부통령) 뛰어 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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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7일 오후 5시30분, 성조기와 일장기가 각각 두 개씩 놓인 일본 도쿄 총리 관저 1층 기자회견장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들어섰다. 이전보다 한결 편해 보이는 아베 총리의 표정과 근엄하게 찡그린 펜스 부통령의 모습이 묘한 조화를 이뤄 회견장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베 “핵 포기 없으면 대화도 없다”

이날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의 회담은 여러 의미에서 한국과 동아시아 주변국들의 이목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다. 애초 아베 총리는 12·28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크게 반발해 한때 평창겨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올 정도였다. 또 이 회담은 펜스 부통령의 8일 방한을 앞두고 올림픽을 매개로 진행 중인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공식 석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과연 아베 총리와 펜스 부통령은 문 대통령과 만나 어떤 얘기를 나눌까. 전세계의 이목이 도쿄 총리 관저로 모였다.

아베 총리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일본은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의 1월1일 신년사(“동결 상태에 있는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뜻깊은 올해를 민족사에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빛내자”)로 시작된 남북대화 분위기에 일찌감치 ‘재 뿌리기’를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1월24일치 <산케이신문>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북한의 위협이 절박해지는 시점에서 일본과 한국이 연대해야 한다. (중략)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 1994년 제네바합의, 2005년 6자회담(9·19 공동선언) 때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들은 이를 시간을 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핵·미사일 개발을 했다”고 말했다. 즉, 북한이 한·미·일 등 주변국들의 강력한 압박에 굴복해 스스로 핵을 포기하겠다고 꼬리를 내리고 나오지 않는 한 북한과의 대화는 무의미하다는 대북 초강경론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입장은 어떨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그동안 김정은 위원장을 “미치광이” “나쁜 녀석” “로켓맨” 등의 표현을 써가며 조롱했으면서도 1월7일 <월스트리트 저널>과 한 인터뷰에선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라고 말했다. 또 전날인 1월6일 기자회견에서도 김 위원장과 통화 가능성에 대해 “나는 늘 대화를 믿는다.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다. 전혀 문제없다”고 밝혔고, 현재 진행 중인 남북대화도 “(남북이) 올림픽에 대해 협상하려는 생각은 좋다”고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아베 총리의 발언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그는 “펜스 부통령과 충분한 시간을 들여 북한의 최신 정세를 분석하고, 이후 (취해야 할) 방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북한이 핵·미사일 계획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관련국에 북한의 ‘미소 외교’에 눈을 빼앗기지 않도록 호소하자는 데 일치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언급한 ‘관련국’이란 한국을 뜻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여러 차례 (한국의 대북 관여 정책에 반대한다는) ‘미국과 일본의 인식이 일치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일·미가 확인한 이 방침을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확인받아, 대북한 정책에 대한 일·미·한의 강고한 협력 관계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고 강조했다.

펜스 “엄혹한 제재 곧 발표할 것”

놀라운 것은 펜스 부통령의 발언이었다. 2월9일 평창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하는 펜스 부통령은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6·25 이후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는 첫 ‘백두혈통’(김일성 주석의 핏줄)인 김정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어떤 식으로든 마주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자리에서 북-미 접촉을 기대하는 관측을 의식한듯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이번 겨울올림픽에 선수단을 한국에 보낼 예정이다. (북한은 개막식 때) 한국과 함께 같은 깃발 아래서 행진한다. 이것은 예전에도 있었던 일이다. 2000년, 2004년, 그리고 2006년 겨울올림픽에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북한은 도발을 계속했다. 실제로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겨울올림픽이 끝나고 8개월 뒤 북한은 핵실험을 했다.” 그는 이어 “동맹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북한이 독재적이고 잔혹한 국가라는 것을 전하고 싶다.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난 뒤 사망한) 오토 웜비어의 아버지와 함께 간다. 북한이 이번 올림픽의 이미지를 프로파간다(선전)로 이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 분위기를 이용해 (북한이) 자국민을 노예로 억압하는 것을 감추도록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듯, 북한에 잘 대해주면 새로운 도발로 이어진다. 모든 선택지가 테이블 위에 있다. (중략) 북한을 최대한 압박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압력을 계속 가하겠다. 그에 따라 북한에 지금까지 본 적도 없는 엄혹한 제재를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압력을 계속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런 미국과 일본의 태도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대화와 노력들이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고, 북핵 문제가 진도가 좀 나가야 남북관계도 발전할 수 있다”(1월10일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는 한국 정부의 관여 정책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이를 확인하듯 일본 <아사히신문>은 아베-펜스 회담을 설명하는 해설 기사에 ‘대화로 기운 한국에 쐐기’라는 제목을 달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강경 대북 정책에 일본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정확히 알 순 없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정책에 아베 총리가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암시하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 《NHK》는 2016년 11월28일 간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NHK 스페셜》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아베 총리와 나눈 회담 기록과 통화 내용을 취재해 공개했다. 이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서로를 ‘신조’와 ‘도널드’로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 “사무라이 정신으로”

한 예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2월10일 양국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경제제재로 압력을 가했지만 북한의 도발 행위를 막지 못했다. 우리는 레벨을 한층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하자, 아베 총리는 “말 그대로다. 압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피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동조한다. 또 트럼트 대통령은 같은 해 4월6일 전화 회담에선 “북한은 악의 국가다.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4월24일 전화 회담에선 “신조 건강한가. 북한의 도발이 그치지 않는다. 지금은 대화의 때가 아니다. 미국은 강한 자세를 보이려 한다. 일본도 강고한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임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부정적인 대북관을 밝힐 때마다 적극 동조하며 미국의 대결적 대북 정책을 부추겨왔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