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너도 메갈?" 손나은을 향한 '이상한' 손가락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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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여성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손나은이 자신의 SNS에 “아침 부은 얼굴. ‘GIRLS CAN DO ANYTHING'(여성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문구와 함께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사진이 올라온 후 누리꾼들 사이에서 난데없이 설전이 벌어졌다. ‘페미니스트 아니냐’, ‘무엇이 문제냐’, ‘별 의미 없이 쓴 말일 것이다’, ‘설마 손나은마저’, ‘메갈만 아니면 된다’는 등의 반응과 악플이 오갔다.
 
심지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손나은”, “페미니즘”, “페미니즘 뜻”, “GIRLS CAN DO ANYTHING”이 오르기까지 했다. 각종 언론은 “손나은, 페미니스트 의혹? 평소 ‘패션 리더’로 유명··· 의미 없을 수도”, “때아닌 페미니스트 논란” 등의 내용을 담은 기사를 쏟아냈다. 현재 손나은은 해당 게시물을 삭제한 상태다.
 
“GIRLS CAN DO ANYTHING”은 페미니즘에서 자주 사용하는 문구다. 또, 손나은이 사진과 함께 올린 문구가 동일하게 적혀있는 스마트폰 케이스는 한 패션 브랜드에서 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손나은이 자신이 공개적으로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적은 없다. 논란이 커지자, 손나은 측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케이스는) 페미니즘 굿즈가 아니다. 촬영 갔던 브랜드 측으로부터 이 케이스를 협찬 형식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그가 어떤 의도로 글을 올렸는가와 별개로,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문구조차 ‘논란’이 되어버리는 이 상황은 씁쓸하다. 한국 사회가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시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인 것이 ‘의혹’이 되는 사회


 


페미니즘은 다른 것이 아니다. 성차별이 존재하는 사회, 특히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성차별로 인해 피해를 받던 집단인 여성의 지위를 동등하게 만들겠다는 운동이다. 그러니까, 인권운동의 한 부류인 것이다. 그런데 여성의 인권을 말하는 이 운동이 언젠가부터 ‘뇌물수수’, ‘표절’, ‘범죄’ 같은 곳에 붙던 단어인 ‘의혹’과 쌍을 이루게 됐다. 이상한 일이다.
 
꼭 무언가 잘못이라도 저지른 듯한 느낌이다. 페미니스트 혹은 페미니즘이 ‘의혹’으로 표현될 때, 이를 말하는 이들은 주눅 들 수 있다. 친한 사람에게조차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알리기 꺼릴 수도 있다. 이미 SNS상에서 수도 없이 겪은 것과 같은, 편견 어린 시선과 반응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너 메갈이야?”
“그런 걸 굳이 왜 해?”
“요샌 성차별 없잖아”

 
이런 반응들을 보면 어떻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진다. 공기처럼 퍼져있는 성차별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논의를 한발짝 진전시키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경험을 기반으로 이 땅에 차별이 존재함을 말했는데, 이를 곧바로 부정한다면 더이상의 설명과 설득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너 메갈이냐”라는 반응은 가장 어렵다. 한국의 페미니즘 역사에 있어 메갈리아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기 때문이다. 메갈의 언어 사용이나 미러링이라는 전략, 단지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논쟁할 수 있는 부분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전략이 탄생하게 된 전후 맥락까지 고려하면 무작정 비판하기도 어렵다. 메갈 이전에는, 아무리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도 주목받지 못한 게 일부 사실이기 때문이다.
 
메갈이 미러링을 통해 성차별적인 언행을 고스란히 되돌려 보여준 뒤부터 페미니스트의 목소리가 더 많은 사람들의 귀에 닿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페미니스트가 된 이들도 많다. 최근 페미니즘의 흐름에 대해 말할 때마다 함께 거론되는 메갈의 역할을 ‘잘했다’, ‘잘못했다’로 단순히 평가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더 많이 논쟁하고, 더 많이 말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적인 문구를 SNS에 썼다는 이유만으로 공격받는 사회에선 그렇게 하기 힘들다.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면, 타인의 시선으로 인해 페미니스트로서 행동하길 주저하고 있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솔직히 말해, 나도 여전히 행동 하나 하나가 두렵고 조심스럽다. 그래서 더더욱, “나 페미니스트야”라고 이야기 했을 때 의문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보다 “나도”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곳곳에서 ‘페미니즘 말하기’를 이어가야 한다. 페미니스트가 ‘의혹’이 되는 이 사회의 프레임을 함께 깨나가야 한다.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길” 그 말의 의미


 


사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신경 쓰였던 건 “별 의미 없이 쓴 것일 거다”, “설마 손나은 마저”라는 반응이었다. 원색적인 비난에는 무뎌졌다. 오히려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길” 바라는 반응이 더 복잡하게 다가왔다.
 
페미니즘을 알면 알수록, 불편한 진실들에 대해서 알게 된다. 그 불편한 진실들을 마주칠 때마다, 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한다.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이야기해도 “프로불편러다”, “왜 이렇게 예민하냐”라는 반응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가끔 ‘차라리 페미니즘을 몰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진실에 눈감을 수 없고, 절대 되돌아 갈 수 없다. 내가 불편한 상황에서 침묵하게 된다면, 이는 누구를 위한 일일까.
 
‘너만은 페미니스트가 아니길’ 바라는 사람들,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있어주길 바라는 사람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반쪽짜리 평화’만 바라는 것이다. 또한, 그 불편함들을 참다가 언젠가 상처를 입는 것은 여성들이다. 이것이 내가 싸움을 감수하면서도 페미니스트가 된 이유다. ‘너는 페미니스트가 아니길’ 바라는 그 공고한 틀을 깨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사회를 바꾸기 위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직업적으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일상에서 페미니즘적인 생각과 발언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리와 입이 굳으면 현실도 이대로 굳어버린다. 공고한 성차별의 벽에 익숙해져버릴 수 있다.
 
페미니스트들의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법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실제로, 이러한 노력이 모여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 20만 달성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마주한 지금, 다시금 생각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라서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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