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카툰] 정조가 찜한 인재, 최홍만보다 컸던 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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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병조 판서 김문순(金文淳)에게 이르기를,

“영남 유생 허일(許馹)이 신장이 매우 크고 문벌이 권무(勸武)에 적합하기 때문에 훈장(訓將:훈련대장)으로 하여금 전령(傳令)하여 홍화문 밖에 대령하게 하였으니, 경들로 하여금 보게 하려는 것이다.”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신은 장신 이주국(李柱國)에게서 허일의 신장이 자신보다 1자(尺)가 크다고 들었습니다.금번 능행(陵行) 때 남녀노소가 모두 허일을 큰 볼거리로 여겨 가는 곳마다 에워쌌다고 합니다.

그러자 허일은 그 요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여 후미진 곳으로 물러나 앉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가 툭툭 차서 일어나게 하여 크게 지쳤다고 합니다.”하였다.

허일에게 앞으로 나아오라고 명하고 선전관으로 하여금 키를 재게 하니 주척(周尺)으로 10자(2m 20cm)였다. 내가 이르기를,

“이와 같은 신장은 옛날에도 드물었다. 경들은 혹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10여 년 전에 서강(西江)에 사는 석저구(石杵臼)라는 사람이 유명했는데, 신장이 매우 컸으나 지금 허일과 비교하면 미치지 못할 듯합니다.”하여, 내가 나이가 몇인지 물었다.

허일이 대답하기를,

“22세입니다.”

하여, 입고 있는 철릭(貼裏)은 누구에게 빌렸는지 묻자, 김문순이 아뢰기를,

“포교 중에 신장이 가장 큰 자에게 빌려 입었고 아랫단 가장자리를 풀었는데도 오히려 짧아서 겨우 무릎만 가렸습니다. 가죽신도 가장 큰 것을 빌렸는데도 좁아서 뒷솔기를 터서 신었다고 합니다.”하여, 내가 이르기를,

“팔의 힘도 남들과 다를 것이다.”

하니, 김문순이 아뢰기를,

“사람들이 손톱으로 팔을 찔러도 손톱이 들어가지 않고 흔적도 없다고 합니다.”하였다.

중금(中禁:임금의 심부름꾼)을 손바닥 위에 세우게 하니 허일이 그를 쉽게 들어 올렸다. 이어서 훈련대장 서유대에게 궁시(弓矢)를 지급하여 사예(射藝)를 익히게 하고 아침, 저녁거리를 제공하라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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