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중학교 동창이 병상의 이건희 회장에게 쓴 편지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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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1.14 06:07

“건희야 내 친구라서 행복했다.”

조태훈 건국대 경영대 명예교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서울사대부중고 동기생인 조태훈 건국대 경영대 명예교수가 5년째 병상에 누워있는 이건희 회장을 그리워하는 글을 주간조선에 보내왔다. 원고지 45매 분량의 이 글에서 조 교수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절친’ 이건희와의 추억들을 떠올리며 친구가 병상에서 빨리 일어나기를 기원하고 있다. 다음은 발췌 요약한 것이다. 전체 내용은 1월 15일자로 발매되는 주간조선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주>

울산 출신인 나는 1955년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했다. 당시 서울사대부중은 ‘천하 부중’이라고 명성이 높았다. 중 2때 한 아이가 전학을 왔다. 얼굴이 뽀얗고 눈이 유난히 크고 동그란 아이, 삼성 이병철씨 아들인 이건희였다.

건희는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았다. 반찬이 좋아 우리와 쉽게 친해졌다. 건희는 한 팔로 상대방 목을 졸라 누르면서 항복을 받아내는 놀이를 좋아했다. 나와는 호적수였다. 장충동 집에 놀러 가면 건희는 축음기로 흑인 여가수 마할리아 잭슨의 LP판을 틀어주면서 “인종, 신분, 국경을 초월하게 하는 것이 ‘문화의 힘’”이라고 말했다.

1978년 피에르 가르뎅이 이병철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가운데 조태훈 실장이 통역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가르뎅, 조태훈, 이병철, 한 사람 건너 이건희. /조태훈

건희가 일본 와세다대로 유학 가면서 우리는 잠시 멀어졌다. 나는 군 복무를 마친 뒤 벨기에에서 10년 동안 유학하다 귀국해 중앙일보 이사였던 건희를 만났다. 얼마 후 건희는 삼성 부회장이 됐고 후계자가 됐고, 나는 비서실 팀장으로 출근해 7년 반 동안 삼성에 있었다. 나는 건희와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나눴다. 느릿느릿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건희는 “우리 민족은 손이 섬세해 전자업종이 잘 맞는다”며 당시 건물 3동에 불과한 삼성전자를 주력으로 키울 생각을 했다. 또 미쓰이물산 일화를 들려주면서 최고경영자는 법무·홍보·정보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가 1977~1978년이었다.

어느 날 오후 이병철 회장이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삼성이 반도체사업을 할지를 결정하는 회의였다. 투자금액과 리스크가 어마어마했다. 사장단 3분의 2가 반대했지만 삼성은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 그 결단의 중심에는 막 후계자가 된 건희가 있었다.

어느 날 건희가 나를 보자고 했다. 건희는 “내가 경부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15분간 죽었다가 깨어났다”고 했다. 건희는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시도 때도 없이 깜짝깜짝 놀라고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고 했다. 백약이 무효였는데 몸을 흔들어주는 운동이 특효라고 해서 승마를 시작했노라고 했다. 건희에게 승마를 가르쳐준 사람은 중학교 친구였다. 

1959년 서울사대부고 2학년 때 친구들과 소풍을 간 이건희 (오른쪽) /조태훈

나는 건희를 친구로 둬 늘 든든했다. 보름달이 뜨면 건희의 눈망울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지금도 얼른 달려가 이렇게 말하면서 한 대 때려주고 싶다. “건희야! 그동안 죽을 힘을 다해 힘들게 살아와서 3년이나 쉬어야 했냐? 나한테 점심 사주기 전에는 절대 갈 생각 말거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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