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하던 금융회사, 6년 만에 ‘빚 갚으라’ 독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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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초반 김아무개씨는 최근 대부업체로부터 빚 독촉장을 받았다. 지난 2011년 이후 아무런 추심이 없었기 때문에 갚아야 하는 기간이 끝난 것으로 알았던 김씨는 독촉장을 보고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김씨의 말이다.

“그 동안 추심이 없었는데 갑자기 정부가 장기소액채권 탕감 정책을 발표하니까 며칠 만에 곧바로 대부업체에서 지급명령을 보냈습니다. 확정 판결이 나오면 연이자가 20%로 오르고, 집안 살림 도구도 압류돼 경매 현장에서 팔리는 거죠. 저는 이의신청을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채무자들이 이의신청을 못 할 거에요. (지급명령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거죠.”

대부업체들이 돈을 받아내기 위해 갚을 기간이 지난 빚까지 부당하게 독촉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회사들이 무리하게 추심을 하더라도 법적 제재를 받지는 않기 때문. 앞서 지난 2016년 금융당국은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대부업체를 비롯한 금융회사들을 지도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빚 갚아야 할 기간 끝났는데…정부서 탕감정책 나오자 대부업체 빚 독촉

부당 추심을 당한 김씨는 지난 2003년쯤 삼성카드 등 카드사들을 통해 현금서비스를 이용했고, 1200만원 가량의 빚을 졌었다. 이후 그는 매달 성실하게 빚을 갚았고 삼성카드 빚은 2006년 당시 약 19만원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삼성카드는 이 채권을 대부업체에 팔아버렸고, 이후 6차례의 매각을 거쳐 현재의 대부업체인 케이아이코아즈대부가 채권을 가지게 됐다. 이 대부업체는 2011년 이후 빚 독촉을 더 이상 하지 않았고, 5년이 지나면 채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때문에 김씨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지난해 11월28일 케이아이코아즈대부가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 대해 지급명령을 청구했다.
ⓒ 조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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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지난해 11월말 정부가 연체기간이 10년 이상이고, 원금이 1000만원 이하인 장기소액채권을 소각해주는 정책을 발표했다. 이에 채권 소각 압력을 받을 것을 우려한 대부업체가 채무자에게 빚을 갚으라는 지급명령을 뒤늦게 청구한 것. 이에 김씨는 소멸시효가 끝났다며 이의신청을 제기했지만, 소멸시효가 끝났더라도 지급명령을 받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채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대부업체 등 금융회사가 부당한 추심을 하더라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하기 어렵다는 것이 금융당국 쪽 설명이다. 구원호 금융감독원 신용정보실 신용정보팀장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을 추심하는 것에 대해 법에 명기된 것은 구체적으로 없다”며 “금감원의 채권추심업무 가이드라인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를 입법화하기 위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발의를 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명기화된 것이 없어 이런 문제가 간혹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유난히 소멸시효 완성 채권만 사서 독촉하는 경우 많아”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런 부당 추심이 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유순덕 주빌리은행 팀장은 “추심회사들 가운데 법망을 피해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들만 사는 곳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해에 유난히 시효가 완성된 채권만 사서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예를 들어 100건 신청해 50건만 상환돼도 엄청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더불어 유 팀장은 “지난해 12월말 대부업체들도 채권을 많이 소각했고, 채무자들도 (금감원 가이드라인 영향으로) 추심을 못한다는 것을 안다”고 부연했다. 그는 “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을 추심하겠다고 하는 업체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씨는 성실하게 빚을 갚고 있었음에도 과거 삼성카드가 채권을 외부에 팔아 넘기면서 문제가 더욱 커진 경우에 해당한다. 수백 만원의 원금과 여기에 붙은 이자를 꾸준히 갚던 중 소액만 남긴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대부업체의 빚 독촉을 받게 된 것. 김씨는 “국민카드에도 빚이 있었는데 이를 꾸준히 갚다가 20만원 정도 남자, 정부 관련 기관을 통해 탕감 받았었다”며 “삼성카드 건은 갚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멸시효 완성돼도 채무자들은 몰라서 갚게 돼…조치 필요”

이와 관련해 유순덕 주빌리은행 팀장은 “(카드사 등이) 채권을 (금액, 연체기간 등에 따라) 분리해서 팔지 않고, 한꺼번에 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만약 이달까지 완납이 안되면 일괄 매각하는 식”이라며 “이렇게 (소액으로) 대부업체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삼성카드 관계자는 “당시 내부 기준대로 처리를 했는데 김씨의 경우 장기 연체자에 해당했었다”며 “2006년 이후로는 채권을 외부기관에 매각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당시 대부분의 카드사들이 장기연체 채권을 일괄적으로 매각했었다”며 “최근 매각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금융회사가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에 대해 추심을 진행하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지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연체된 후 이어져온 채권이고,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인데 최근 또다시 추심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19만원을 갚지 않았다고 대부업체에 (채권을) 팔아 넘긴 카드사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갚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보통 금융회사들이 소멸시효 완성 하루 전날 독촉해 시효를 연장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전 교수는 “소멸시효가 완료된 것인데도 추심을 받게 되면 채무자는 갚을 필요가 없는지 몰라서 갚게 된다”며 “이에 대한 별도의 홍보나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부당 추심을 진행한 케이아이코아즈대부와 수차례 연결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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