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잃은 국내 미술시장… ‘큰손’들 외국 작품으로 눈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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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미술계의 얼굴은 잔뜩 찌푸린 형국이었다. 일부 메이저 화랑과 경매사들을 제외하곤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단색화 위주의 거래가 미술시장의 양극화를 불러온 것이다. 새로운 가치창조의 부재가 미술시장의 빈곤을 자초한 꼴이다. 시장만 있지 비평으로 대표되는 가치 논의가 실종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풍성하고 건강한 시장은 다양한 층위가 공존할 때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2017년 한국미술밥상에는 단색화 반찬만 여전히 올려져 식상했다.

어찌 됐건 지난 한 해 한국미술을 논할 때 중심축은 미술시장이다. 역사적으로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시기엔 특정 수요자의 취향이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 갔다. 종교와 정치권력이 미술품 가치판단을 좌지우지했다. 이젠 자본가 등이 주도하는 미술시장이 미술판 이야기의 전부가 된 시대가 됐다.

게다가 미술시장의 글로벌화는 한국미술시장의 기존의 ‘문법’들을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있다. 외국 메이저 화랑과 경매사들의 국내 진출과 맞물려 국내 미술시장 정보들이 점점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더 이상 컬렉터들이 믿지를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큰손들은 ‘약속어음’이 될 수 있는 검증된 유명 글로벌 작가의 작품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외국갤러리들의 국내 컬렉터들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파리 페로탱 갤러리는 서울 팔판동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 뉴욕의 대표적 화랑인 페이스갤러리도 서울 이태원에 둥지를 틀고 주도면밀하게 국내미술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세계적인 경매사 필립스도 한남동에 내년 상반기 사무소를 연다고 한다. 미국과 유럽 미술품을 사들이는 국내 컬렉터들에게 ‘직구’의 기회가 활짝 열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들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금들이 검증이 끝난 외국 유명작가 작품으로 몰려들고 있다. 특정 작가의 작품을 구해 달라는 수요가 엄청나다. 일각에서는 자금 규모가 1조원에 가까울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미술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다뤄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전의 경주순회전 모습. 한국미술의 좌표 설정을 모색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작가는 물론 컬렉터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미술시장 규모가 10년 내 10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경제 규모에 비춰 본다면 이상할 것도 없다. 오히려 보수적인 진단이라는 게 중론이다. 세계적 화랑과 경매사들이 국내 컬렉터들을 향해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자신들의 전속작가 작품을 집요하게 마케팅하는 배경이다. 외국 대가의 작품을 한국에 선보이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천명할 정도다.

국내 미술시장이 유동자금을 흡수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천문학적인 자본 유출이 염려되는 이유다. 새해에는 한국미술의 다양한 ‘가치’를 어필할 수 있는 미술계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미술이 저평가됐다는 점에서 투자가치의 여력은 충분하다. 상투잡이에 근접하고 있는 외국작품에 비해 안전한 투자처란 분석이다. 한국고미술시장도 진위 감정의 신뢰도에 따라 폭발적인 가격 상승이 기대되고 있다. 문제는 국내 컬렉터와 기획자, 딜러, 행정가들이 가치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들이 충분히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 지향의 기획전시를 중심으로 ‘미술 소사이어티’가 형성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우선 동시대 미술계를 아우르는 담론 형성의 중심이 돼야 할 국공립 미술관들의 역할 제고가 시급한 과제다. 자체 기획평가와 더불어 외부 전문가들의 평가가 함께 이뤄지고 시스템 구축이 절실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2017 시각예술창작산실 우수전시 순회사업 :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V-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전은 좋은 본보기다. 지난달 서울 전시에 이어 내년 1월31일까지 경주예술의전당 알천미술관에서 순회전이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대전시립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남농기념관 등의 소장품 협조로 이뤄진 전시다. 한국현대미술의 큰 흐름을 살펴보고 그 속에서 한국미술의 좌표를 설정해 보자는 취지다.

미술은 돈이 움직이는 곳으로 향하게 마련이다. 유럽에서 미국, 아시아로 돈이 움직이고 미술도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미술의 위상을 제고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세계미술계도 한국미술에 대한 관심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한국미술의 ‘글로벌 유전자’를 드러내는 다각적인 노력을 새해에는 기대해 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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