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유족들은 예수의 운명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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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명의 영전에서 세월호 유족들과 더불어 성탄 예배를 드리는 오늘 12월 20일, 이날이 본래 어떤 날이 되었을지 기억하시겠습니까. 만약 지난겨울 촛불 혁명이 없었다면 오늘은 본디 대통령 선거 날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명박, 박근혜 그리고 이들과 유유상종한 그 누가 다시 대통령이 되는 끔찍한 날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고 보니 오늘 성탄 예배는 우리가 셀 수 없을 만큼 불렀던 세월호 노래,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이 현실이 된 것을 축하할 자리입니다. 고통받는 사람들 앞(위)에 멈춰 선 하늘의 작은 별, 짙은 어둠을 몰아낸 아기 예수의 탄생이 실로 오늘처럼 고맙고 감사한 적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촛불 혁명의 동력이자 토대였던 세월호 유족들의 고통과 수고에 머리를 숙입니다.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성탄 예배가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고인이 된 세월호 아이들이 이 땅, 대한민국에 멈춰 선 하늘의 별이 되었고 비난의 표증이던 유족들이 촛불 혁명의 기적을 선사한 까닭입니다. 누구의 어머니요 아버지들, 그러나 자식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할 유족들의 아픈 저항이 이 백성들에게 큰 위로를 선물한 것입니다. 하여 2017년 성탄을 세월호 성탄이라고 불렀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을 바꾼 위대한 사건으로 기억되기를 바라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수백 년간 외세로 인해 고통받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늘의 위로가 내리기를 구하며 살았던 한 노인 시므온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불현듯 마리아 품에 안긴 채 종교의식 수행 차 성전에 들어온 아기 예수를 보며 시므온은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위로자’가 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민족에게 임할 하늘 위로를 보았기에 이제 죽어도 좋다는 말까지 남길 정도로 감격했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이 말한 백성들이 받을 위로와 구원의 성격은 전혀 예상 밖이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에게 전한 민족의 위로자가 될 예수의 운명과 미래는 백성들의 기대와 크게 달랐습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며 일으켜 세우기도 할 것인바, 한마디로 ‘비방받는 표증’이 될 것”이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기다리던 위로와는 참으로 상관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다음처럼 이어 갔습니다. “이 아이가 사람들 마음을 칼로 찌르듯 아프게 하여 마음속 생각들을 다 드러낼 것”이라고 말이지요. 비방받는 자로서의 예수, 그가 진정 민족의 위로자가 될 것이라는 말뜻을 생모인 마리아조차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여러 성탄의 이야기가 있으나 ‘비방받는 자의 표증’으로서의 예수, 이 말을 옳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성탄의 신비가 온전히 해명되지 않을 듯싶습니다. 위로자가 ‘비방받는 자’가 될 것이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겠습니까. 가늠하시겠으나 예수가 줄 위로는 세상이 주는 위로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이룰 평화가 세상의 평화가 동일할 수 없는 까닭이겠습니다. 인간들의 숨은 생각까지 다 밝혀내서 우리들 양심을 아프게 한다 했으니 그것이 진실로 위로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예수의 운명이자 감당할 사명이었고 그것 때문에 예수는 고통을 받았으며 이런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위로자,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성서 전체의 가르침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는 우리에게 있어 걸려 넘어지는 돌(스캔들)입니다. 그 돌에 걸려 넘어지는 자들은 하늘의 위로가 그들 몫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돌을 발로 딛고 일어서는 자에게 예수는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것이 시므온이 아기 예수에게서 보았던 민족의 구원이자 이스라엘의 영광이었습니다.

왜 위로자 예수가 걸려 넘어지는 돌이자, 우리들 마음을 후벼 파는 칼이 되어야만 했을까요. 왜 시므온의 예언이 성탄절에 읽어야 할 핵심 텍스트 중 하나가 되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세 가지 점에서 그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의 의식 둔화 탓입니다. 구원을 기다렸으나 실상 그들 속에는 패배 의식이 짙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절망했던 것이지요. 포로기가 길어졌고 강력한 로마 폭정하에서 자신들 조상들의 기대, 하느님 약속은 허울 좋은 이름(명목)뿐이었습니다. 둘째로 그럴수록 이들은 자신을 망가뜨린 외세, 이방 족속들에 대한 적개심을 키웠습니다.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은 분노였고 이는 급기야 동족들 간 적대로까지 발전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과거 이스라엘이 아니라 로마의 축소판처럼 변했던 것이지요. 셋째로 이런 정황에서 로마에 빌붙어 자기 개인적 영달과 안위만을 생각하며 사는 특권층이 생겨났습니다. 민족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그 앞날은 상관할 바 아니었습니다. 힘에 종속되어 조그만 권력이라도 행사하며 사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것입니다.

예수를 민족을 위로할 구세주로 알아챈 시므온은 이런 백성들 정황을 정확히 꿰뚫었습니다. 그렇기에 그가 보았던 구원은 세상의 위로와 달랐습니다. 이스라엘뿐 아니라 적대적 이방인에게도 구원을 선포한 탓입니다. 기억 투쟁에서 실패하여 현실에 안주한 인간 의식을 깨우고자 때로는 이들을 곤혹스럽게 몰아쳤고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칼로 비유하였고 그가 우리들 가슴(양심)을 찌를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렇듯 구원자 예수는 결코 값싼 위로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를 따랐던 제자들에게조차 등질 정도로 예수의 십자가는 오히려 ‘비난의 표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구원이었음을 2,000년 역사가 증거하고 우리가 고백합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 세상으로부터 비난받은 자, 그가 바로 예수였습니다.



이정배 교수.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월호도 그랬습니다. 정확히 세월호 유족들 역시도 이런 예수를 닮았습니다. 모두가 확인했듯이 세월호는 대한민국이 거짓된 국가였음을 밝히는 징표였습니다. 공의를 허물었고 양심을 속였으며 끼리 집단, 마피아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이 땅의 실상을 여실히 밝혀 보여 준 것입니다. 법을 지키지 않을 만큼, 사람을 무고하게 짓밟아도 좋을 듯이, 더 많이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 권력을 가졌기에 세상을 쥐락펴락 했던 위정자들 탓에 이 나라는 민주공화국일 수 없었습니다.

권력에 기생한 대형 교회 정치 목사들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지요. 신도들을 향해 천국 신앙, 거짓 위로를 선포하며 온갖 영화를 누리며 군림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가볍게 여기는 정치적 선동을 종교적 이념으로 뒷받침하며 ‘잊으라’ 했고 유족들을 교회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정치에 종속된 언론, 그 하수인이 된 방송 탓에 유족들은 더더욱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경제를 앞세워 세월호 진실을 덮은 국가, 천국 신앙을 말한 교회들 그리고 정부의 입이 된 언론은 모두 거짓된 위로를 확대재생산하는 공범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 방식으로 속물근성과 헛된 욕망을 감췄고 포장했으며 애써 부정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곳 세월호 분향소에서 무릎 꿇은 정치인들, 언론 및 방송인들의 눈물을 얼마 전 목도했으니 세월호가 세상을 이겼고 구원한 것이 명백합니다.

이렇듯 세월호는 인정하기 싫은 우리들 현주소, 이 땅의 현실을 드러냈습니다. 거짓된 실상을 덮고 감추고자 한 위정자들, 이들의 권력 욕심 탓에 세월호는 비방받았고 조롱당했습니다. 경제, 거짓된 위로에 심취하여 자기밖에 모르던 우리들 삶이 폭로될까 두려워 우리들 역시 참사가 조속히 잊히길 바랐습니다. 이 땅의 종교가 얼마나 허울뿐인지도, 종교가 얼마나 아편처럼 역할을 했는가도 밝혀졌습니다. 관료, 행정가라는 존재들이 얼마나 무책임한 존재들인지도 알게 되었지요.

이렇듯 세월호는 사회적 병폐를 파헤치고 우리들 양심을 찌르는 아픈 칼이 되었습니다. 그럴수록 세월호와 유족들은 비방받는 표증으로서의 예수의 운명을 닮았습니다. 좋다, 평안하다, 문제없다던 이 땅, 대한민국의 적폐적 실상을 온 천하에 밝혔으니 거짓된 나라가 이들 유족들을 인격적으로 살해했습니다. 비난받고 조롱받았던 3년 남짓한 기간,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떻게 삶을 버텨 왔는지 가늠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조롱과 비난이 거짓된 위로를 벗겨 내고 진실된 구원을 이 땅에 선물로 가져왔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 죽음과 유족들 고통이 너무 죄송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위로이자 구원이며 축복이 되었습니다. 너무 죄송하나 동시에 너무 고맙습니다. 그래서 감히 말씀드립니다. 304명의 유족들이야말로 새 세상을 위해 태어난 구세주입니다. 2017년 아기 예수를 인도하던 별이 이곳 안산 추모관 위에 멈춰 섰습니다. 만져질 수는 없으나 유족들 가슴속에 품은 304명 아이들을 우리는 시므온의 마음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유족들이 가슴에 묻은 아이들이 우리의 구원자가 될 것이고 그리 되었다고. 저들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는 예리한 칼날이 되었기에 이 나라에 희망이 생겼고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들을 중히 여겨야 할 시점입니다. 2000년 이후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입니다. 이후(以後)의 역사를 세월호의 고통과 위로와 더불어 살아갈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생명평화마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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